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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시다. 나는 준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나도 오늘 바쁘다.

"여보세요." 준영이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어디야?" 내가 물었다.

"지금 엘리베이터 앞이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어. 알았어. 올라와." 내가 말했다.

"네." 준영이가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여덟 시 십오 분에는 출발해야 되니까. 준영이 수업을 여섯 시에 끝내고. 밥 먹고. 원래는 여섯 시 반부터 여덟 시 반까지 유진이 수업인데. 쉬는 시간 없이 하고 십 분 일찍 끝낸다. 그리고 지하철 역까지 뛴다. 그렇게 하기로 했지.

아니면 아예 유진이한테 십오 분 일찍 갈까? 그래도 되는데. 여섯 시 십오 분. 근데 저녁 시간이라. 전화를 해 볼까? 어떻게 하는 게 더 낫지?

발소리가 들렸다. 준영이가 뛰어왔다.

"안녕." 내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준영이가 웃었다.

"네 시 넘었는데." 내가 말했다.

"이건 진짜 어쩔 수 없어요. 청소 때문에." 준영이가 현관문 앞에 섰다.

"정말 청소 때문에 늦은 거 맞아? 솔직히 말해." 내가 말했다. 문이 열렸다.

"정말이에요. 못 믿겠으면 학교에 전화해 보세요." 준영이가 말했다.

"아니야. 믿어." 내가 말했다. 준영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과학 시험은 어떻게 됐어?" 내가 물었다.

"아, 망했어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왜." 내가 물었다.

"절망이에요." 준영이가 말했다.

"왜 또 절망이야." 내가 웃었다. "몇 개 틀렸는데."

"두 개요. 아. 문제를 진짜 이상하게 내 가지고." 준영이가 대답했다.

"뭐가 이상한데? 가지고 와 봐."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왜 틀렸는지 알아요." 준영이가 말했다.

"왜 틀렸는데?" 내가 물었다.

"그게요. 문제에서 모두 고르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답이 두 개 이상이라는 거잖아요. 하나는 분명히 맞아요. 근데 다른 하나가 조금 애매한 거예요. 그래도 다른 것들이 너무 말이 안 되니까. 그래서 그거 두 개 골랐는데. 답이 하나래요. 아니, 그러면 왜 모두 고르라고 했냐고요. 그냥 맞는 거 고르라고 하면 되지." 준영이가 대답했다.

"그래도 맞는 것만 골라야지. 두 개 고르라고는 안 했잖아." 내가 말했다.

"근데 그 하나가 책에는 안 나오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얘기했다는데. 저는 그날 결석했으니까 당연히 모르죠." 준영이가 말했다.

"에이. 그럼 틀릴 수밖에 없지. 안 배운 건데." 내가 말했다.

"그냥 맞는 거 고르라고 했으면 그거 하나만 골랐을 텐데. 왜 모두 고르라고 해 가지고." 준영이가 말했다.

"또 하나는 왜 틀렸는데?" 내가 물었다.

"그거는 계산 실수했어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그러면, 뭐." 내가 웃음소리를 냈다.

"근데 그것도요. 방금 말한 그 문제 고민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서. 뒤에 거 급하게 풀다가." 준영이가 말했다.

"잘 모르겠으면 넘어가지." 내가 말했다.

"다 맞아야 되니까." 준영이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전학 못 가?"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엄마가 생각해 보겠대요." 준영이가 말했다.

"아,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네. 그래도 수학은 다 맞았으니까." 준영이가 말했다.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말했다.

"네." 준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근데." 내가 말했다.

"네?" 준영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내가 웃었다.

"뭔데요?" 준영이가 물었다.

"그." 내가 턱을 긁적였다. "축구 선수 말이야."

"네." 준영이가 말했다.

"원래 그런 생각이 있었어?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 뭐, 이런." 내가 물었다.

"원래요?" 준영이가 물었다.

"응."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너 저번에는 의사 될 거라고 했잖아. 근데 갑자기 축구 선수 되겠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원래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건지. 그게 아니면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건지."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그러면 그때는 왜 의사 될 거라고 그랬어?" 내가 물었다.

"그때는." 준영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의사도 되고 싶긴 한데. 근데 왜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내가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준영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근데 오늘 뭐 해요?" 준영이가 물었다.

"오늘? 오늘 금요일이잖아. 그럼 수학 해야지." 내가 대답했다.

"다 했잖아요. 저번에 책 다 끝났는데." 준영이가 말했다.

"이제 삼 학년 거 해야지." 내가 말했다.

"삼 학년 거요? 삼 학년 거를 왜 벌써 해요?" 준영이가 물었다.

"이제 삼 학년 올라가니까 방학 때 예습 해야지. 알면서." 내가 대답했다.

"아직 방학 안 했는데요. 다음 주부터 하면 안 돼요?" 준영이가 물었다.

"다른 애들은 다 시작했어."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부터요. 네?" 준영이가 물었다.

"월요일에는 과학 해야 되잖아." 내가 말했다. 준영이가 책상에 엎드렸다.

"그럼 오늘 뭐 해? 놀아?" 내가 물었다.

"아!" 준영이가 몸을 일으켰다. "책이 없는데요. 그러네. 책이 없네. 아. 아쉽다. 진짜 하고 싶었는데."

"어, 아니야. 책 가지고 왔어." 나는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준영이가 웃었다.

"좋아서 웃는 거지?" 나는 책을 준영이 앞에 놓았다.

"아니요." 준영이가 책 위에 엎드렸다.

"야. 나 오늘 바빠. 정확히 여섯 시에 끝내야 돼." 내가 말했다.

"왜요?" 준영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건 모르셔도 되고요." 내가 말했다.

"더 일찍 끝내도 되는데." 준영이가 말했다.

"하는 거 봐서. 빨리 일어나." 내가 말했다.

"네." 준영이가 말했다.

"오. 사. 삼. 이. 일. 일. 일." 나는 준영이 어깨로 손을 뻗었다. 준영이가 몸을 일으켰다.

"책 펴세요." 내가 말했다.

"어디요?" 준영이가 책장을 넘겼다.

"일 과." 내가 대답했다.

"제곱근이네." 준영이가 말했다.

"일단 거기 쭉 읽어 봐. 그 다음 페이지까지." 내가 말했다.

"네." 준영이가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열었다. 네 시 십 분. 아홉 시 반. 다섯 시간 이십 분 남았다. 아. 유진이한테 전화해 봐야지.

"읽고 있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준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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