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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이다. 하루만 더 버티자. 나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선생이 나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내가 말했다.

"좋은 아침." 이 선생이 웃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어디 안 좋아요?" 이 선생이 물었다.

"아니요." 내가 웃었다. "잠을 못 자서."

"공부하느라?" 이 선생이 물었다.

"네." 내가 대답했다.

"원장님이 찾으시던데." 이 선생이 말했다.

"저요?" 내가 물었다.

"네." 이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두 시는 진짜 무리다. 늦어도 한 시에는 자야지. 힘드네. 못 들었나. 나는 문을 두드렸다.

"네." 남자 목소리였다. 원장이다. 나는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었다. 원장이 나를 쳐다보았다.

"원장님." 내가 말했다.

"어, 철수씨. 들어와." 원장이 손짓했다.

"네." 나는 문을 닫았다.

"바쁜데 미안. 잠깐 앉아 봐. 커피 마실래?" 원장이 안경을 벗고 일어섰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아, 참. 커피 안 마신다고 그랬지." 원장이 말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팔은 좀 어때? 괜찮아?" 원장이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이발했네?" 원장이 웃었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다른 게 아니라. 조금 있으면 방학이잖아." 원장이 말했다.

"네." 내가 말했다.

"철수씨가 방학 때 애들 논술을 봐 줄 수 있을까?" 원장이 물었다.

"논술이요?" 내가 물었다.

"응." 원장이 대답했다.

"제가 왜 논술을." 내가 웃었다.

"철수씨가 그쪽으로 좀 되잖아. 우리 학원에는 죄다 수학 과학 선생님들뿐이라서." 원장이 대답했다.

"아니요, 저도."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글쓰기 연습만 시키면 돼. 아직 중학생들이니까. 논술 수업은 해본 적 없다고 그랬지? 별 거 없어. 일단 주제 하나를 골라서 읽기 자료를 간단히 만들어. 그거 가지고 잠깐 토론하고. 한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 애들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그리고 나서 그걸 글로 적어라. 그게 다야. 나중에 쓴 것 좀 봐주고." 원장이 말했다.

"어. 근데." 내가 눈썹을 긁적였다.

"지금보다 수업하기는 더 쉬울 거야. 수업시간도 더 줄고. 그리고 맨날 수학 과학만 들여다 보면 지겹잖아. 응?" 원장이 웃었다.

다음 달에는 학원에 못 나온다.

"사실 예전부터 생각은 있었는데. 가끔 학부모들한테 전화가 오거든. 지금부터 논술 준비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대학교 들어갈 때 논술 시험 보는 거 알지? 나도 처음에는 너무 이른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말이 맞아. 고등학교 올라가면 지금보다 더 바빠지니까. 논술 준비할 시간이 어디 있어. 수학, 과학, 영어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러니 다들 시험 보기 직전에 학원으로 몰려가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게 몇 주 만에 되나. 흉내만 내는 거지. 교수들이 그걸 모르겠어? 보면 바로 알아. 내 친구 하나가 대학 교수인데, 매년 논술 채점하는데 불려가거든. 걔가 하는 말이, 정말 심각하대. 애들이 글을 쓸 줄 모른다는 거야. 이건 도저히 고등학생이 쓴 글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거지. 걔가 한숨을 쉬더라고. 그래도 서울에서 꽤 이름있는 대학인데. 논술은 일찌감치 시작해야 돼. 철수씨, 잠깐만 이리로 와 봐." 원장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중학생들 논술 수업을 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깜깜한 거야. 논술 선생님을 따로 구해야 하나.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아까 말한 거처럼 글 쓰는 연습만 시키면 되거든. 그러면 여기 선생님들 중에 누구 없나? 마땅히 없어. 일로 와 봐. 이것 좀 봐." 원장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나는 원장의 옆에 섰다.

소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