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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가 창문 앞에 섰다. 창문 밖으로 눈이 내린다. 많이 오네. 우산 가지고 왔으니까.

"야. 집에 갈 때 나 우산 좀 씌어 줘." 정호가 말했다.

"눈 많이 오네." 내가 말했다.

"나 버스 타고 가는데." 인수가 말했다.

"지하철 타고 가도 되잖아. 오늘만 지하철 타고 가자." 정호가 말했다.

"안 돼. 지하철 타면 빙 돌아가야 돼. 이십 분은 더 걸려." 인수가 말했다.

"무슨 이십 분이야. 십 분 정도 더 걸리겠지. 그리고 눈 오는 날에는 길 막히잖아. 아마 오늘은 지하철이 더 빠를 걸." 정호가 말했다.

"왜. 우산 안 가지고 왔어?" 내가 물었다.

"아니요. 누구 빌려줘서요. 야. 지하철 타고 갈 거지?" 정호가 물었다.

"빌려주기는. 형. 얘 우산 왜 어디 갔는지 알아요?" 인수가 웃었다.

"야. 하지마." 정호가 말했다.

"어디 갔는데?" 재영이가 물었다. 인수가 정호를 쳐다보았다.

"하지 말라고." 정호가 말했다.

"그게요." 인수가 웃었다. "아까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어떤 여자애가 와서 우산을 씌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니까, 저기 교육대학 쪽으로 올라간대요. 그때 저희는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었거든요. 학교 밖으로. 그럼 반대 방향이잖아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그랬죠. 그런데 정호가 갑자기 그 여자애한테 자기 우산을 쓱 내미는 거예요. 쓰고 나중에 돌려달라고."

"예뻤어?" 재영이가 물었다.

"아니. 그다지." 인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야. 솔직히 얼굴은 예뻤다." 정호가 대답했다. 내가 웃었다.

"그래서? 번호는 받았어?" 재영이가 물었다.

"응. 받기는 받았는데." 정호가 대답했다.

"근데 그쪽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는 거." 인수가 웃었다. 재영이가 웃었다.

"그냥 못 받은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처음에는 저희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수신 거부가 되더라고요." 인수가 대답했다. 재영이가 웃음소리를 냈다.

"월요일에 심리학과 사무실로 찾아가려고요." 정호가 말했다.

"심리학과 다니는 애야?" 내가 물었다.

"네. 심리학과 일 학년이라고 그랬어요." 인수가 대답했다.

"이름은 알아?" 재영이가 물었다.

"아니. 근데 얼굴은 아니까. 사진 보고 찾으면 되지. 일 학년은 몇 명 안 되잖아." 정호가 대답했다.

"그거 안 보여줄 걸." 재영이가 말했다.

"그리고 심리학과가 아닐 수도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러네. 야. 심리학과가 아닐 수도 있네." 인수가 말했다.

"한 번은 마주치겠지." 정호가 말했다.

"마주치면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웃었다.

"동아리 방에 가 봐. 거기 우산 있을 걸." 재영이가 말했다.

"너 키 있어?" 정호가 물었다.

"없어. 야. 우리 다음 주부터는 동아리 방에서 하자. 여기 너무 춥다." 재영이가 말했다.

"아니면 철수 형이랑 같이 가. 형 지하철 타고 가죠?" 인수가 물었다.

"응. 나 지하철 타고 가. 그런데 나는 바로 집에 갈 건데. 너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며." 나는 정호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집에서 하죠 뭐." 정호가 말했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 내가 말했다.

"네." 정호가 말했다.

"가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멨다.

집에 가서. 오늘 한 거부터 정리하고. 그 다음에. 아니다. 그냥 쉬자. 하루는 쉬어야지. 오늘 한 거만 정리하고. 일찍 자.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소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