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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가로등. 아직 새벽이다. 지금 몇 시지? 휴대폰. 나는 책상으로 손을 뻗었다. 아. 안 꺼냈지. 가방. 책장 밑에 있는데. 일어나야 한다.

대학원 떨어졌다. 혹시 꿈인가? 아니다.

"참." 나는 한숨을 쉬었다.

될 줄 알았는데. 뭐가 문제였지? 나이가 많아서? 그러면 서류에서 떨어졌어야지. 그렇잖아. 필기도 쉬웠는데.

면접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지원 동기. 관심 분야. 그게 다였는데. 그리고 앞으로 계속 연구 하겠다. 문제 없었잖아.

소설.

왜. 휴학하고 소설을 써서? 그것 때문에 떨어졌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건 아니다.

아니면 지원자가 정말 많았나 보다. 내 학점이 아주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될 줄 알았다.

"아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참."

재영이는 붙었나? 정호. 인수. 연락이 없네. 다들 열심히 했는데.

됐다. 알아서 잘 하겠지.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건데? 김철수.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회사. 회사로 가야지. 그래. 그러면 되잖아. 하나는 되겠지. 설마. 하나는 될 거다.

"그래. 괜찮다. 괜찮아." 나는 주먹을 쥐었다.

아직 하나 남았으니까. 아직 하나 남았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내 길이 아니었던 거다. 그것뿐이다. 너무 낙심할 필요 없다.

일어나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버지다.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당신도 참. 애 나이가 몇 살인데. 걱정하지마. 잘 할 거야. 응? 왜." 아버지 목소리였다.

"누구니?" 어머니 목소리였다.

"저요." 내가 대답했다.

"철수?" 어머니가 물었다.

"네." 내가 주방에 들어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아버지가 말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내가 말했다.

"왜 벌써 일어났어.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가서 더 자."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에요. 다 잤어요." 나는 컵에 물을 따랐다.

"어디 안 좋니?"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어제 일찍 잤어?" 아버지가 물었다.

"열한 시쯤이요." 내가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일찍 잔 건 아니네." 아버지가 말했다.

"빵 있나?"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배고파서 깼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빵 어디 있어요?" 내가 물었다.

"빵 어디 있어?"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냉장고를 닫았다.

"무슨 빵이야, 새벽부터. 조금 기다려. 밥 먹게." 어머니가 일어섰다.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다." 아버지가 주방을 나갔다.

"너 어제 저녁 뭐 먹었어?" 어머니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 어지러워. 응? 저녁 뭐 먹었어."

"안 먹었어요." 내가 말했다.

"왜?" 어머니가 물었다.

"속이 안 좋아서요." 내가 대답했다.

"왜 또." 어머니가 쌀을 씻었다.

"점심 먹은 게 안 좋았나 봐요." 내가 말했다.

"지금도 그래?"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요. 지금은 괜찮아요." 내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밖에서 음식 먹을 때는 항상 조심하라고 그랬지." 어머니가 말했다.

"어제 준수 늦게 들어온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너 들어올 때 없었어?" 어머니가 물었다.

"없던데요." 내가 대답했다.

"김준수 저거 정말 큰일이야. 방학 내내 저러면 어떡하냐, 저거." 어머니가 말했다.

"방학 때는 놀아야죠." 내가 말했다.

"또 놀아? 뭐, 학기 중에는 안 놀았어? 그리고. 남들은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 없는데 혼자만 놀아?" 어머니가 말했다.

"영어 공부 한다고 그랬잖아요." 내가 말했다.

"배고프면 바나나라도 먹어." 어머니가 말했다.

"네." 나는 바나나를 집었다. 그리고 껍질을 벗겼다.

"삼십 분만 기다려." 어머니가 말했다.

"그, 대학원 안 됐어요." 나는 바나나를 깨물었다.

"안 됐어? 왜?"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모르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발표 난 거야? 언제?" 어머니가 물었다.

"어제요." 내가 대답했다.

"될 거라며." 어머니가 말했다.

"진짜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네." 내가 말했다.

"완전히 끝난 거야? 추가 합격 같은 건 없어?" 어머니가 물었다.

"네. 끝났어요." 내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목소리였다.

"여보! 잠깐만 일로 와 봐." 어머니가 말했다.

"왜." 아버지가 다가왔다.

"얘 대학원 안 됐대." 어머니가 말했다.

"어?" 아버지가 멈춰 섰다. "안 됐다고?"

"네." 내가 대답했다.

"아니, 뭐 이렇게 되는 게 없어. 회사도 안 되고, 대학원도 안 되고.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대체. 속상해 죽겠네, 정말." 어머니가 말했다.

"아직 하나 남았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럼 그냥 회사 들어가게?" 아버지가 물었다.

"네." 내가 대답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것도 붙어야 들어가지." 어머니가 말했다.

"하나는 되겠죠. 설마." 내가 말했다.

"응. 될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결과가 언제 나온다고?" 어머니가 물었다.

"토요일이요." 내가 대답했다.

"그럼 갔다 올게." 아버지가 말했다.

"다녀 오세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주방을 나갔다.

"오늘도 늦어?" 어머니가 아버지를 따라갔다.

다섯 시 십 분. 삼십 분만 더 잘까. 그럼 다섯 시 사십 분이지. 밥 먹는 데 십 분. 씻는 데 십 분. 이십 분. 여섯 시. 충분하네.

"김철수." 어머니가 내 옆에 섰다.

"네." 내가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 응?" 어머니가 말했다.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야. 공부는 그만큼 했으면 됐어. 지금 시작해서 언제 박사 받고, 언제 취업해서, 또 언제 결혼할래?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계속 공부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석사만 마치고 취업하는 거 힘들 거 같다며. 그러니까 차라리 잘된 거야. 그냥 네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해." 어머니가 말했다.

"네.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내가 말했다.

"그래. 외국에 혼자 가서 공부하는 게, 그게 보통 일이냐. 그리고 교수 되는 것도 얼마나 치열한데.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그냥 마음 편하게 살아. 응? 그게 최고야." 어머니가 말했다.

"한 삼십 분만 더 잘게요." 내가 말했다.

"김철수. 알았지?" 어머니가 말했다.

"네. 사십 분에 깨워 주세요." 나는 방으로 향했다.

"사십 분?" 어머니가 물었다.

"네." 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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