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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이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봉투를 받고 돌아섰다. 은석이. 은석이가 문 밖에 서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십삼 번이 말했다.

"네. 오늘 수고하셨어요." 내가 말했다.

"다음 면접 때 봬요." 십사 번이 웃었다.

"네. 다음에 봬요." 나는 문 쪽으로 움직였다.

여섯 시다. 집에 도착하면 일곱 시. 씻고 밥 먹으면 여덟 시쯤 되겠다. 잠깐 쉬었다가. 여덟 시 반. 아홉 시. 열두 시까지 세 시간. 세 시간만 하고 자야지. 일찍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하자.

"가자." 내가 말했다.

"응." 은석이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은석이 옆에서 걸었다.

"뭐 타고 왔어?" 내가 물었다.

"지하철. 너는?" 은석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지하철." 내가 대답했다.

"야. 근데 너 뭐 안 좋은 일 있어?" 은석이가 물었다.

"아니, 없는데. 왜?" 내가 물었다.

"너무 조용해서. 너 원래 이렇지 않았잖아. 옛날에는 진짜 말 많았는데. 수업시간에 떠들다가 맨날 선생님한테 혼나고." 은석이가 웃었다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말했다.

"응? 뭐가?" 은석이가 물었다.

"그, 중학교 졸업하기 바로 전에. 종이 돌려서 서로한테 한 마디씩 써주는 거 했었잖아. 그거 뭐라고 그러지?" 내가 물었다.

"그런 거 했었나. 모르겠는데." 은석이가 말했다.

"선생님이 시켜서 했었어.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거기에 그렇게 써놨더라.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수업시간에 떠들지 말고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자기가 걱정 된다고." 내가 웃었다.

"너 진짜 그랬어." 은석이가 말했다.

"여자애였던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너는 언제 졸업했어?" 은석이가 물었다.

"학부? 올해 이 월에." 내가 대답했다.

"올해 졸업 했어? 학부를?" 은석이가 물었다.

"응." 내가 대답했다.

"왜 그렇게 늦었어?" 은석이가 물었다.

"일단 학교를 일 년 늦게 들어갔고." 내가 대답했다.

"재수는 나도 했는데. 중간에 휴학했어?" 은석이가 물었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스물일곱에 졸업했으니까. 올해 우리가 스물 아홉이지. 그러면 이 년이네. 이 년 동안 휴학한 거야? 아닌가? 일 년인가?" 은석이가 물었다.

"이 년 맞아." 내가 대답했다.

"이 년 동안 뭐 했냐. 외국 갔었어?" 은석이가 물었다.

"아니. 벌써 컴컴하네." 나는 건물 밖을 가리켰다. 은석이가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도와줘?" 은석이가 손을 내밀었다.

"아니야. 괜찮아." 나는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팔은 언제 그런 거야?" 은석이가 물었다.

"저번 주말에. 야, 빨리 가자. 춥다." 내가 말했다.

나는 휴대폰 전원을 켰다. 집에서 전화가 왔었다. 오늘 검사 받으러 간다고 했었는데. 별 문제 없겠지. 나이 때문일 거다. 그리고 요즘에는 다 고칠 수 있으니까.

"야. 차 밀리는 거 봐." 은석이가 팔을 뻗었다. 차가 밀린다. 빨간 불빛들이 언덕 위까지 이어졌다.

"근데, 원래 석사까지만 할 생각이었어?" 내가 물었다.

"응? 아." 은석이가 웃었다. "면접 갈 때마다 그거 물어보더라."

"왜 공부 그만두고 회사로 왔냐고?" 내가 물었다.

"응." 은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빨리 취직해서 결혼하려고. 여자친구 나이도 있고. 박사를 따도 교수 되기는 힘들 것 같고. 그러면 결국 회사원 되는 건데, 괜한 고생 할 거 없잖아. 또 유학 가려면 돈도 많이 들고. 아마 결혼은 포기해야 될 걸." 은석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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