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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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센은 집무실에서 전령을 맞이했다.

전령은 긴 인삿말과 미사여구 없이 바로 본론을 전했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전하께서 위급하십니다. 대영주들은 모두 왕성으로 모여, 의무를 다하시오.”

왕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대영주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루이센 역시 대영주로서 왕성에 가야만 했다. 거부할 수 없는 부름이었다. 집무실에 함께 있던 하인들이 크게 술렁였다.

루이센은 침통한 듯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왕과 가까이 지냈던 것을 알기에 갑작스러운 소식에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 전령은 조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공작님.”

“……그래.”

낮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루이센이 대답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됐다! 됐어! 와, 진짜!’

루이센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전령이 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교황과의 대화를 통해, 루이센은 왕이 회귀 전과 비슷한 시기에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회귀 전 루이센은 정신을 반쯤 놓고 다녔기에 정확히 언제 왕이 죽는지 몰랐다. 그래도 떠오르는 기억을 모두 끌어모아 보니, 어제, 오늘, 내일, 삼 일 중에 왕이 죽는다고 추려낼 수 있었다.

만약 더블레스 백작이 루이센을 왕성에 불러들여 음모를 꾸민다고 한다면, 왕의 죽음이라는 그럴싸한 구실을 이용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에 맞추어 루이센도 악마숭배자를 토벌할 준비를 해 왔다. 이미 이틀 전부터 공작령과 수도 저택 모든 토벌 준비를 마쳐 두었다.

무조건 회귀 전의 기억대로 될 거라고 낙관하는 건 아니었다. 회귀 전과 많은 게 달라졌으니까 왕의 죽음이 더 늦어질 수도 있고, 또 백작이 루이센의 도발에 걸리지 않아 왕성을 봉쇄하고 의식에만 집중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백작이 부르든 말든 삼 일 차인 내일에는 무조건 공격을 개시하기로 정해 두었다. 루이센이 왕성에 들어갈 수 없을 경우, 왕성 문을 넘어설 또 다른 계획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차선책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승률이 낮기 때문에 루이센이 왕성에 들어가 왕성 문을 여는 것이 가장 최선책이었다.

‘백작이 도발에 걸려 줘서 다행이야.’

날짜도 딱 좋았다. 오늘 루이센이 왕성에 들어가게 되어 자정쯤에 왕성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면, 공작령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시점과 비슷하게 왕성에서도 공격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시작이 아주 괜찮다. 루이센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알겠네. 지금 바로 입궁할 준비를 할 테니, 잠시 기다리게.”

“예, 공작님.”

급히 감정을 추스르고 대영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에 전령은 작게 감탄했다.

루이센은 전령을 내보내고 침실로 이동해 왕성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철판을 덧댄 조끼를 입고 그 위로 검은 셔츠를 걸쳤다. 검은 외투를 입고 목 부근의 장식을 정리했다. 외투는 품이 넉넉한 스타일로 안쪽에는 주머니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주머니에는 치료약이나, 해독제, 성수 같은 것들을 담았다. 그 무게가 상당했으나 그사이 근력이 좀 늘어난 덕분에 움직이는 데 크게 힘들진 않았다. 머리카락은 적당히 뒤로 넘겨 정리했다.

왕의 임종을 지키러 가는 것이다.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없으니 의복을 갖추는 것은 금방이었다.

준비를 마친 루이센은 저택을 나섰다. 그 뒤를 가신들이 졸졸 따라 나왔다.

저택의 앞에는 칼튼이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니에스 공작가의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었다. 흰색과 밀색이 뒤섞인 제복은 기사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색 조합이었으나, 칼튼에게 근사하게 잘 어울렸다. 오늘 그는 기사로 위장하고 루이센을 호위할 예정이었다.

“마차에 오르시죠, 공작님.”

칼튼은 기사다움을 의식했는지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흉내 내는 것이 꽤 그럴듯해서 작게 웃음이 나왔다. 루이센은 칼튼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게 시선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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