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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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루거에게는 몬스터를 부리는 힘을 가진 패거리가 있었다. 한 달 전이라면 루거는 공작령에 있을 때이니 루거는 아니다. 이건 그 패거리의 짓일 거라고 추정되었다.

놈들은 그 기괴한 힘으로 은밀히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는 듯했다. 루이센은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이렇게 이상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니, 떠도는 소문으로라도 들려올 법도 한데 말이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뭘 바라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이래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루거랑 무슨 관계지? 날 납치하려는 것도 이런 짓거리랑 관련이 있는 건가? 전생에도 이랬나?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루이센은 순간 현기증이 났다. 까마득히 깊은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칼튼은 조용히 다가와 덜덜 떨리는 루이센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마세요. 일단 여자들을 데리고 여길 나가요. 생각은 안전한 곳에 가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칼튼의 단호한 어조에 루이센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래, 그러자. 일단 나가서……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

이미 청년들은 한 명씩 여자들을 안고 나가고 있었다. 얼른 뒤를 따라가려고 하는데 살랑대는 바람이 루이센의 뺨을 스쳤다.

‘응? 바람?’

칼튼이 루이센의 어깨를 안고 끌어당겼다. 루이센의 눈앞으로 검은 액체가 찍, 하고 날아왔다. 옷자락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녹아내렸다. 으악! 이게 뭐야!

샤샤샤.

머리 위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빨리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거대한 지네가 천장에 달라붙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네의 붉은 눈 십 수 개가 도로록 굴렀다. 지네는 톱날 같은 이빨 사이로 검은 침을 흘렸는데, 땅에 닿자 살벌한 소리를 내며 부식되었다.

“다들 도망쳐요!”

“아아악!”

마을 청년들도 지네를 발견하고, 여자들을 안은 채로 도망쳤다. 뒤쪽에 있는 루이센과 칼튼이 제일 위험했다. 칼튼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루이센을 달랑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쾅!

지네가 머리를 바닥으로 찍어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칼튼은 그 자리를 피해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는 좁고 길었고 오르막길이었다. 앞서가는 마을 청년들은 다들 한 명씩 여자를 안고 있었다. 칼튼이 제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네는 수십 개의 다리를 부산하게 놀려, 벽면을 타고 돌며 그들을 쫓아왔다.

쿵, 쾅, 쿵!

지네가 다리로 벽면을 찍을 때마다 부서질 것 같은 진동이 전해졌다.

“아악! 저놈 죽은 거 아니었어? 혹시 몰라서 불태우기까지 했잖아!”

“……같은 놈이 아니에요.”

“뭐?”

“지네는 암수가 한 쌍으로 다니는데, 젠장. 이제 생각났습니다. 저건 암컷 지네예요.”

칼튼이 죽인 놈보다 더 크고, 더 길고, 심지어 독도 있었다. 저런 게 한 놈도 아니고 쌍으로 돌아다닌다고? 세상이 미친 게 틀림없었다.

루이센은 지네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삼켜 버릴 것처럼 커다란 입을 쩍쩍 벌리는 것을 보았다.

‘으아아아악.’

루이센은 팔로 칼튼의 목을 감싸고 다리로는 그의 허리를 감쌌다. 체면이고 뭐고 떨어지면 죽는다. 그 일념으로 칼튼에게 답삭 안겼다.

지네는 끈질기게 쫓아오면서 틈틈이 이빨을 들이밀었다. 쩌억, 벌어진 이빨 사이로 독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절로 신을 부르게 되는 순간이었다.

신이시여. 어째서 저딴 생물을 세상에 만들었나요? 신은 언제나처럼 묵묵부답이었지만 루이센에게는 칼튼이 있었다.

칼튼은 요령껏 지네의 머리나 이빨 같은 곳을 걷어차며 방어했다. 중간중간 지네 머리를 벽에 처박아 가며 시간을 벌었다. 그 덕에 마을 청년들과 루이센 모두 무사히 굴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바위 주변에는 소식을 듣고 모인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뭐 해요? 얼른 도망쳐요!”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