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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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튼의 말 속에서 외팔의 순례자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이 되어 있었다. 듣고 있다 보니 루이센은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칼튼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외팔의 순례자를 욕하는 걸 듣고 있자니 ‘그거 아닌데,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반발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체를 집요하게 숨길 거 보면 수배 중인 흉악범일 수도 있겠네요. 몹쓸 자식. 험한 일 당한 건 아니죠?”

“아니…… 그러진 않았어. 오히려 잘해 줬는데…….”

“사기 치는 놈들이 원래 그래요. 사람 정신 못 차리게 잘해 주죠. 그렇게 사람 농락하다가 단물 다 빠지면 팽, 하고 버리고요.”

“…….”

루이센은 굳은 얼굴로 몸을 일으켜 칼튼의 품을 빠져나왔다. 칼튼은 루이센이 낙심했다 생각하여 그를 달랬다. 하지만 핀트가 어긋났다.

“괜찮아요, 공작님. 속은 사람이 나쁜가요, 속인 놈이 개자식인 거지. 그 인간은 평생 그렇게 사람 등쳐 먹으면서 살았을 겁니다.”

“그렇게 비겁한 사람은 아니야.”

루이센은 소심하게 반박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정말 잘해 주셨어.”

외팔의 순례자와 여행하면서, 자주 노숙을 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루이센을 불가에 먼저 재웠다. 루이센은 한 번도 불침번을 서 본 적이 없었다. 음식이 생기면 항상 루이센의 입에 먼저 넣어 주었고, 없는 형편에도 루이센이 아플 때면 의사를 불러다 주었다.

“사기 치려면 뭔들 못 해요.”

루이센은 울컥했다. 칼튼이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인 건 알지만. 루이센은 삼 년간 방황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사기꾼도 많았고, 몇 번이고 사기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어떻게 안면몰수하는지 잘 알았다.

“그분은 그런 사기꾼이랑은 달랐어.”

루이센은 일 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외팔의 순례자를 떠올렸다. 차츰 이성이 돌아오면서 회귀 전의 그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줬다.

“……말은 얼마든지 꾸며내. 그치만 행동은 아니야.”

처음 만나서 죽을 때까지, 외팔의 순례자의 행동은 변함없이 한결같았다. 외팔의 순례자도 어느 순간부터는 루이센에게 얻어 낼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루이센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다. 맥락도 없이 잘해 준다고 쏠랑 성자님, 성자님 한 건 아니다.

루이센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래. 처음 의도가 어쨌든, 그분에게 받은 건 진짜였어.’

그는 루이센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로 인해 루이센은 희망과 안식을 얻었다. 설령 그 의도가 온전히 선의가 아니었다고 한들, 루이센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분은 나한테 두 번째 기회를 주었어.’

외팔의 순례자는 신에게 무엇이든 부탁할 수 있었다. 그가 한때 간절히 바랐을 부와 명예, 신분, 혹은 다시 시작할 기회까지도. 그런데 그는 루이센을 과거로 돌려보냈다. 루이센에게 새로운 삶을 양보한 것이다.

‘노인이 될 때까지 나를 잊지 않았던 거야.’

함께한 시간에 거짓말이 끼어 있다고 한들 어떤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외팔의 순례자는 루이센을 진심으로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는데.

“그분이 누구든 내 은인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같은 말을 배 위에서 칼튼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뱉었던 말이 바로 정답이었다. 이걸 왜 고민했을까 싶을 정도로,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그분이 어떤 사람이든, 나만의 성자님이셔.”

그리고 그 성자님은 내내 루이센의 곁에 있었다. 칼튼이 자신의 성자님이었던 것이다.

“이것 좀 풀어 줘. 이제 도망 안 쳐.”

“…….”

칼튼은 이불을 풀어 주었다. 팔다리가 자유로워진 루이센은 그대로 칼튼에게 뛰어들었다. 양팔 가득, 조금 버겁지만 할 수 있는 한 크게 칼튼을 품에 안았다. 얼떨떨한 칼튼을 보며 루이센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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