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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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심한 꼴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잘 생각해 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 고블린한테 깔려 있었거든?”

루이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칼튼은 그때를 떠올리는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아, 그때. 굉장히 얼빠진 얼굴이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여웠는데요.”

“!”

훅 들어온 칭찬에 루이센은 칼튼의 가슴팍을 가볍게 손으로 퉁, 하고 쳤다.

“그때도 고군분투하고 계셨죠. 공작님은 늘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 그걸 안다면 누구도 한심하게 보지 못할 겁니다. 망나니라는 인식을 뒤집은 거, 공작성에서도 이미 해 본 일 아닙니까. 이미 한 번 성공한 일이니 이번에도 잘될 겁니다.”

“그러려나……?”

“저도 공작님을 싫어했는걸요. 그런데 지금은…….”

칼튼은 루이센의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기고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깃털처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 입술의 감촉은 루이센의 가슴속까지 간질였다.

‘하긴. 저 칼튼도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수도 저택 사람들이 아무리 루이센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어도, 처음 만났을 무렵 칼튼의 살기등등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칼튼에 비하면 수도 저택 사람들의 망나니 취급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래. 할 일을 하다 보면 망나니 취급이야 자연히 바뀌게 되겠지.’

지금까지도 쭉 그렇게 해 오지 않았나. 칼튼의 말대로 공작성에 있을 때 이미 한 번 해 본 일이었다. 회귀한 뒤 여러 일을 겪었다. 공작령에서 전쟁을 막으며 최악의 상황도 견뎌 냈고, 악마숭배자들에게 쫓기면서도 잘 버텨 냈다. 그러니 이번에도 잘할 수 있다.

칼튼의 위로에 힘입어, 루이센은 자신감을 가득 충전했다.

“뭐 그렇지만 눈만 마주쳐도 무릎을 꿇는 건 좀 과한 감이 있긴 하죠.”

“그치? 당장 할 일도 많은데 다들 날 경계하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니깐.”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왕성에 있다는 악마숭배자들의 배후도 알아내야 하며, 공작가의 권위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지금처럼 가신들이고 하인들이고 비협조적이어서는 조금 곤란했다.

“똑똑한 자네가 말해 봐. 뭐 좋은 아이디어 없나?”

“식사 초대라도 하죠?”

“식사?”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찬에 초대해서 노고를 위로하고 같이 식사를 하는 거죠. 친밀감을 높이는데 같이 밥 먹는 것만 한 게 없죠. 공작님이 그들을 특별하게 신경 써 준다는 느낌이 들 테니 원망도 누그러들 테고요.”

칼튼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루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솔들을 한데 모아 치하하고 식사를 대접하는 건 회귀 전의 루이센이 절대 할 리 없는 일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자신이 달라진 면모를 자연스럽게 보이기 좋을 듯했다.

그리고 공작령에서 영지민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생각한 건데, 같이 밥을 먹으면 친밀감도 빨리 늘었다.

“좋아. 자네 말대로 해야겠어.”

부총관에게 가서 말을 꺼내 봐야겠다. 어차피 음식이야 루이센을 환영한다고 넘치게 준비하고 있을 테니, 갑자기 제안해도 어렵지 않을 거고. 그러다가 루이센은 불현듯 생각나 덧붙였다.

“저녁 식사는 기대할 만할 거야. 공작가의 만찬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올라와, 가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을 정도지. 자네가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음식도 있을 거야.”

이거라면 칼튼에게 자랑할 만하겠지. 군침이 돌면서도 기대감이 들었다.

“자네는 내전 이후의 모습밖에 못 봐서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원래 공작가는 더 대단해. 더 부유하고 일하는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사람들도 너그러운 편이지.”

“네.”

“왕가와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거 알아둬. 왕자가 자네를 뭘로 꼬시든 나도 그만큼 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아하하.”

칼튼이 웃음을 터트렸다. 루이센이 왜 자꾸 가문 자랑을 하나 했더니 내심 왕자랑 경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