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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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지네가 아니었다. 놈은 일단 컸다. 옆에 있는 나무들만큼 길고 두꺼운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개로 절개된 몸통은 꼭 잘 달궈 둔 쇠처럼 반지르르한 빛이 흘러 단단해 보였다. 지네의 몸통에 달린 수십여 개의 다리는 붉고, 각자 칼날이 달린 것처럼 날카로웠다.

루이센도 왕국을 떠돌며 못 볼 꼴 많이 봤지만 저런 거대 지네는 처음이었다. 평범한 지네에 물리면 아프고 그만이지만, 이 지네는 물리는 순간 몸을 두 동강 내고도 남을 것 같았다. 몸서리가 쳐지도록 징그러우면서 무시무시했다.

‘지네야? 몬스터야?’

보통 지네와 달리, 안면부에 새빨간 구슬 같은 것이 십여 개 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칼튼과 루이센을 살폈다. 십여 개의 눈을 가진 지네는 듣도 보도 못했다. 역시 몬스터인가?

지네는 스스, 하는 소리를 내며 나무를 기어 올라갔다. 지네의 긴 몸통이 둥글게 나무를 휘어 감았고, 수십 개의 다리가 달각달각대면서 움직였다. 놈은 덩치와 다르게 무척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 위로 이동하더니, 허공에서 루이센을 향해 날아왔다.

“으악!”

루이센은 비명을 질렀다. 놈은 처음부터 계속해서 루이센만 노렸다. 무리에서 가장 약한 개체를 우선해서 노리는 것이었다. 루이센 혼자라면 분명 지네에게 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제피스가 있었다. 제피스는 다시금 한발 먼저 지네의 공격을 피했다.

쾅!

지네가 달려들던 그 힘을 못 이겨 땅에 처박혔다. 평범한 동물이라면 머리뼈가 박살 났겠지만,

‘으, 으으……. 징그러워……. 무서워……. 징그러워…….’

놈은 다시 샤샷, 하고 나무를 기어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칼튼이 빨랐다. 그는 지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지네의 가장 앞에 있는 다리 두 개를 잘라 버렸다.

끼아아악!

지네가 비명을 질렀다. 수십 개의 다리가 일제히 촤르륵 펼쳐지면서, 몸통을 기이하게 뒤틀어 댔다. 잘린 다리의 단면에서 진액이 뚝뚝 흘러내렸다.

지네가 고통에 마구 꼬리를 흔들자, 퍽퍽, 하고 나무가 쓰러졌다. 마구잡이로 이어지는 지네의 공격에 칼튼이 루이센을 지키며 틈을 벌렸다. 그사이에 제피스는 루이센을 데리고 멀찍이 떨어지면서 싸움에 휩싸이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빠졌다.

다리를 잃은 지네는 공격 대상을 칼튼으로 바꾸었다.

칼튼과 지네가 짧은 공방을 주고받았다. 지네는 수십 개의 다리를 정밀하게 움직여 빠르게 이동해 앞발을 휘두르고, 불식 간에 꼬리를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는가 하면 높게 치든 머리를 내려치며 송곳니로 칼튼을 뚫어 버리려고도 했다.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왔고 하나하나가 강력했다. 공격이 빗나간 자리에는 땅이 움푹 파이거나 나무가 박살이 났다. 지네의 앞발이 칼튼의 검과 부딪힐 때면 캉, 하고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짝 스친 정도로는 지네의 몸통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루이센은 조마조마하게 칼튼을 바라보았다. 칼튼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상대가 너무 전대미문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칼튼은 그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그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지네의 공격을 받아쳤다. 지네가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 사방에서 공격을 쏟아부어도 칼튼은 여전히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걸음도 밀리지 않았다.

지네의 단단한 외피에도 칼튼은 당황하지 않았다. 칼튼은 관찰하듯 냉정하게 지네를 바라보며 지네의 다리를 하나씩 잘라 냈다. 그럴 때마다 지네는 몸을 마구 뒤틀며 흰 배를 드러냈다.

‘와, 와. 한 번을 안 밀리네.’

충성심이 강한 제피스가 멀찍이 떨어져 꿈쩍도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였다. 이쯤 되자 루이센도 마음을 놓고 싸움을 지켜볼 수 있었다.

상황이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네는 전략을 바꾸었다. 놈은 쉭쉭, 소리를 내다가 몸을 돌려 땅속을 파고들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놓칠 칼튼이 아니었다. 칼튼은 지네의 꼬리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키아아악!

지네의 비명 소리가 하늘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멀찍이 떨어진 루이센도 순간 섬찟한 마음이 들 정도로 끔찍한 소리였다. 지네의 긴 몸뚱이가 마구 위아래로 꿈틀거리며 요동을 쳤다. 땅이 쿵쿵, 울렸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