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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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튼은 눈도 좋고 눈치도 빨랐다. 속옷만 입은 루이센을 보고, 방 안을 한번 훑어보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루이센이 저 무쇠의자에 손발이 묶여 앉아 있었을 것이며, 모리슨은 고문 도구를 보이며 그를 압박했겠지. 가뜩이나 어두운 걸 무서워하는 사람을 이 어두컴컴한 방에 처넣고 죄인처럼 발가벗겨서 이런 수모를 겪게 하다니.

칼튼은 더더욱 모리슨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의 두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루이센은 칼튼의 눈이 돌아간 것을 보고, 다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루이센의 손은 차가워서 칼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자신을 붙잡고 떨어지질 않으려고 하는 걸까.

루이센이 너무도 애처로웠다. 이 방에서 루이센이 혼자서 얼마나 겁먹었던 건지 아직도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분노에 사로잡혀 뜨거워졌던 머리가 한결 차갑게 식어 갔다. 칼튼은 검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모리슨보다 루이센을 안심시키는 것이 먼저다. 그는 망토를 벗어 루이센의 어깨를 망토로 감쌌다. 초겨울의 공기는 맨몸으로 버티기에는 추워서, 루이센의 마른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던 참이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놈이 무슨 짓을 하진 않았고요?”

“어, 괜찮았어. 나 멀쩡해. 그 자식 나한테 손가락 하나 못 댔어.”

칼튼은 망토를 들춰 가며 루이센을 앞뒤로 꼼꼼하게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이 늦어 그가 다쳤을까 봐 애가 타서 지켜보는데, 그 마음도 몰라주고 루이센은 버둥거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루이센의 눈도 생생했다. 마음의 충격을 받은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오히려 두 눈은 생기로 가득 찼고, 표정도 신이 난 것 같았다.

루이센이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칼튼은 비로소 안도했다. 그는 쓰러지듯이 루이센을 끌어안았다. 루이센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가만히 지친 숨을 내뱉었다.

구름 위에서 내던져져서, 추락하고 또 추락하다가 땅과 충돌하기 직전에 간신히 구출된 기분이었다. 루이센을 찾아다니는 동안 칼튼은 두려웠다.

어린 시절에도, 가출할 때도, 처음 용병 일을 시작했을 때도. 칼튼은 지금보다 작고 약했지만 겁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했으며 두려움이라고는 몰랐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세상을 그의 발아래 깔린 무대로만 여겼다.

그러나 루이센을 찾는 내내, 칼튼은 겁에 질렸다. 수십 개의 칼날이 자신을 향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루이센을 영영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자신이 늦어 그가 다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공포에 칼튼은 압도되어 버렸다. 자신이 루이센을 제때 찾아낼 수 있을지, 이 길이 맞는 건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자꾸만 끔찍한 상상만 떠올라 가슴속에는 절망만 가득했다.

루이센도 조심스럽게 칼튼의 어깨를 마주 안아 왔다. 길고 흰 팔이 자신을 끌어안는 걸 느끼자, 그제야 루이센과 무사히 다시 만났음이 실감 났다.

칼튼은 눈을 감고 루이센의 체온을 느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익숙해진 루이센의 냄새가 나서, 조금씩 날카롭게 일어선 감각이 누그러졌다. 칼튼은 안심하면서, 아까까지 자신을 지배하던 공포가 여름 소나기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해.’

너무도 자신답지 않았다. 평생 알아 온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는 루이센을 더 단단히 꼭 끌어안았다.

“무사해서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루이센이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칼튼은 평생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잃어버리고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루이센이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머리가 식고 생각해 보니, 애초에 모리슨은 루이센을 해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칼튼의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모리슨과 그 부하들이 한 번에 덤벼들어도 칼튼의 상대가 못 되었다. 치밀한 계략에 빠진 것도 아니고, 압도적인 힘에 당한 것도 아니다. 그저 방심하고 있다가 당했다.

이번 일로 루이센이 자신에게 실망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칼튼 역시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루이센의 실망한 표정을 보는 것은 싫어, 더 꽉 루이센을 끌어안았다. 자신보다 더 작고 가는 루이센에게 매달리듯이 안겨 고개만 푹 숙였다. 자괴감에 괴로워 낮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