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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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가 서 있는 바로 아래 지면이 무너져 내렸다. 지네가 땅속을 마구 헤집고 다녀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육중한 몸으로 난동을 피우자 더 버티지 못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큰 바위가 쓰러져 지네의 몸통을 덮쳤다.

캬아아아아악!

칼튼은 유유히 그 지역을 벗어났다. 지반의 붕괴는 정확히 그가 노리고 있던 것 중 하나였다.

지네는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땅을 파고 들어가 숨었다. 당연히 지네가 지나간 자리에는 긴 굴이 생겼다. 어김없이 발밑이 흔들렸다. 이거 무너질 수 있겠다. 때마침 거대한 바위도 보였다. 칼튼은 일부러 지네가 땅속으로 숨도록 유도했고, 큰 바위 옆에서 반격을 노렸다. 그가 노린 대로 땅이 무너지면서 지네가 혼란에 빠졌고 바위에 깔렸다.

칼튼은 진동이 가라앉자 지네에게 다가갔다. 지네는 마지막까지도 칼튼을 보고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이빨을 까딱댔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지네는 몸통이 박살 났다. 바위를 밀어내지도 못했고, 땅속으로 파고들 수도 없었다.

칼튼은 여유롭게 지네의 머리를 발로 밟고, 지네의 새빨간 눈에 칼을 꽂아 넣었다. 몇 번이고. 키이키이, 하고 지네가 울부짖었다. 지네의 꼬리가 마지막 저항을 하듯 퍽퍽 바닥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힘이 빠지고, 지네는 축 늘어졌다.

칼튼의 승리였다.

“와, 와…….”

루이센은 입을 떡 벌렸다. 한 편의 연극보다 더 극적인 역전이었다. 지네에게 밀리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놈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처음에는 운이 좋았나 했지만 예상했다는 듯이 피하는 칼튼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지반의 붕괴까지 전부 계산해서, 지네를 유도한 게 분명했다.

땅속으로 숨을 수 있는 지네의 유리한 특성을 이용해 지네를 잡다니. 영리하고 순발력 있는 계략이었다. 대단해. 멋있어. 그래도 그렇지 목숨이 오가는 상황인데 어쩜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보는 사람이 다 심장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와, 지네를 죽였어. 저 사람 혼자서.”

미처 멀리 도망치지 못한 마을 사람들, 뭐라도 돕겠다고 도망쳤다 돌아온 사람들도 루이센의 주변에 모여 칼튼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지네는 죽었으나 극적인 역전승에 모두가 넋을 놓았다. 지네가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칼튼이 지네 머리를 잘라 냈다. 그러더니 공을 차듯이 지네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와, 와…… 와아아아아아아!

봇물이 터지듯이 마을 사람들이 열광했다. 드디어 실감이 났다. 저 괴물은 죽었다. 저 용병이 괴물 둘을 죽이고 이 마을을 구한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칼튼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칼튼을 둘러싸고 앞다퉈 찬사를 쏟아 냈다. 루이센도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에게 다가갔다.

칼튼은 루이센을 보며 재수 없을 정도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 꼴을 보자,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성공하긴 했지만 하늘이 칼튼을 외면했다면, 지반이 무너지는 데 칼튼이 휘말릴 수도 있었고 지네의 눈먼 몸부림에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엉망진창인 꼴을 해서 웃긴 왜 웃어? 보는 사람 마음은 타들어 갔는데.

“이…… 정신 나간 인간 같으니.”

“칭찬은 못 해 주실망정 욕이십니까?”

칼튼이 항의했다. 루이센은 더 뭐라고 하려다가 울컥하고 치솟는 감정에 몸을 맡겼다. 그는 성큼 걸어가, 칼튼을 꽉 끌어안았다. 칼튼이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흔들렸다.

“……순례자님?”

역전의 용사답지 않은 멍청한 반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이센은 더 꽉 칼튼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잘했어. 멋있었어. 자네는 정말 최고야.”

칼튼은 숱한 전투를 겪어 왔지만 질투도, 두려움도 없이 직구로 날아오는 칭찬은 낯설면서도 간지러웠다.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속이 충만하게 차오르는 걸 느꼈다.

칼튼의 손이 잠시 망설이다가, 루이센을 마주 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승리에 도취된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서로를 껴안으며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했다.

멀리 도망친 사람들이 지네의 비명 소리를 듣고 돌아오고도 한참 동안 열띤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 루이센과 칼튼도 꽤 오래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