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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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얼마 전에 공작성에서 공문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메뚜기가 온다고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작은 영지라, 온 힘을 다해 메뚜기 떼와 싸우기도 벅차지요. 전쟁을 같이 할 여력이 안 됩니다.”

“그렇지.”

“그래서 영주께서 항복을 위해 아들인 저를 보냈습니다. 저희는 꾀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공작성으로 왔지요. 저희 영지에서 공작성까지 쉴 새 없이 달리면 삼 일이면 도착합니다.”

루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칼튼에게 듣기로도 그 정도 걸린다고 했다.

“공작성에서 공문이 나간 지 삼 일 뒤 우리가 출발해 삼 일을 걸려 이곳에 왔습니다.”

“응?”

루이센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공작성에서 공문이 나간 지 육 일이 지나도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 여기 와 보니, 저들이 하는 말이 공문이 나간 지 한참 지났고 메뚜기떼는 지나간 지 오래라는 거 아닙니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육 일밖에 안 지났단 말입니다! 저희가 기가 막히고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나로서는 자네의 말이 더 이해가 안 되는데.”

“예?”

“육 일이라니. 공문이 나간 건 그보다 훨씬 전이야. 자네들 말고 다른 영주들의 항복 사절은 다 다녀갔고, 메뚜기떼도 거의 다 지나갔어.”

“그, 그럴 리가요! 저희는 쉴 새 없이 왔단 말입니다. 오는 길에 안개가 짙게 낀 곳이 있어 거기서 좀 속도가 늦어지긴 했어도……. 쉬지 않고 왔는데요. 그렇지?”

볼튼이 자신의 일행에게 동의를 구했다. 볼튼의 일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쉴 새 없이 이동했습니다. 정확히 세 번의 밤을 지냈습니다!”

비너드가의 사절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어떻게 생각하나?”

루이센은 칼튼에게 의견을 구했다. 칼튼은 피식, 비웃었다.

“남들이 항복할 때는 고집부리며 버티다가, 막상 전쟁이 코앞으로 닥치니 허겁지겁 항복 사절을 보낸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 항복하기 쪽팔리니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어낸 거고요.”

“우리 비너드 자작가는 유서 깊은 남부의 명가! 그런 비열한 수를 쓰지 않는다! 정말입니다. 정말 저희는 공문이 내리고 육 일이 지났단 말입니다.”

“글쎄, 아니라니까. 열흘이 넘게 지났어.”

루이센은 볼튼을 잘 살폈다. 눈동자가 멀쩡한 걸로 봐서는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볼튼은 혼란스러워하다가 루이센을 의심했다.

“공작님, 혹시 저놈들에게 불미스러운 방법으로 강요를 받으신 거라면…….”

루이센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존심도 없는 것처럼 아부를 하다가 자신이 불리하면 바로 돌변하는 것이 참 귀족다웠다.

“내가? 이 아니에스 공작이 협박을 받고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

루이센이 싸늘하게 말하자 볼튼은 금세 꼬리를 말았다.

“……아, 아니요……. 공작님의 진심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어찌 감히. 그저 너무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공작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대체 저희의 시간은 어떻게 된 거란 말입니까…….”

볼튼은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칼튼의 부하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루이센까지 같은 소리를 하니 혼란이 극에 달했다.

볼튼과 그 일행이 대화를 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루이센은 천막을 나왔다.

“저 말이 사실일까?”

“거짓말이죠. 비너드가의 후계자께서는 연기가 수준급이시군요.”

칼튼은 볼튼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센은 조금 달랐다.

“기왕 거짓말을 할 거면 좀 더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지 않겠나? 강도를 만나 붙잡혀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만. 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까.”

“음, 정말 사악한 요정에게 홀리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마법사라든가?”

“마법사가 한 짓이라면 흔적이 남았을 겁니다. 마법에 홀린 것치고는 지나치게 멀쩡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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