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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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루이센은 눈을 둥글게 뜨고 다급히 말했다.

“칼튼 경. 나야, 나.”

“공작님…….”

칼튼이 잠이 덜 깬 얼굴로 인상을 썼다. 목소리도 잠겨 있었다.

“그래. 나 공작님이야. 알겠지? 이 단검부터 치우자.”

“아, 죄송합니다. 잠결에 그만.”

잠결에 칼을 휘둘러? 이거 큰일 낼 사람이구만? 잠버릇 한번 고약하기도 하지. 게다가 칼튼은 알몸이었다. 루이센은 잠옷 차림이었기 때문에 얇은 천 하나를 사이로 칼튼의 맨살의 감촉이 전해졌다.

단단한 근육의 감촉이 선명했다. 특히 루이센의 허벅지에 은근슬쩍 와 닿는 특정 부위의 감촉이 아주 아주 노골적이었다. 이거 다리야? 다리가 하나 더 있는 거야? 그만큼 존재감이 아주 강렬했다.

루이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공작님이 왜 여기 계십니까? 이런 하늘하늘한 차림으로.”

칼튼은 루이센의 허리를 거리낌 없이 만지작거렸다. 잠이 덜 깼나! 루이센은 몸을 바르작댔다. 칼튼이야 옷을 만지는 거겠지만 루이센은 그가 몸을 더듬는 거 같았다.

“난 입을 게 잠옷밖에 없었어. 지난번에 몰래 방을 나가서 땅속의 노파를 캔 걸 루거한테 들켰거든. 그 뒤로 루거가 옷을 전부 치워 버렸거든. 밤 중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이 야심한 밤에 잠옷만 입고 침대에 기어들어 온 이유가 고작 그거라고요?”

“침대에는 자네가 잡아당긴 거지. 누가 기어들어 왔다고…….”

루이센은 자신이 왜 칼튼에게 변명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변명했다. 루이센의 시선이 허공을 배회했다. 칼튼의 눈빛이 이상하게 진득해서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밑을 보자니 그의 가슴팍에서부터 매끄러운 복근과 그 아래까지 다 보여 민망했다. 요상 야릇한 분위기에 아주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공작님이 무슨.”

칼튼은 루이센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뭐라는 거야? 이제 좀 비키게! 옷도 좀 입고! 이거 원 민망해서…….”

칼튼은 드디어 침대 밖으로 나가 옷을 입었다. 루이센도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왔다. 왠지 그냥 계속 침대 위에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루이센은 테이블에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았다. 곧 칼튼이 루이센의 앞에 앉았다. 상의, 하의 모두 꼼꼼하게 챙겨 입은 걸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쩐 일이십니까?”

칼튼이 물었다. 루이센은 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좀 더 매끄럽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전 상황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왜 이렇게 빨리 떠나나? 이틀 뒤라며? 아니,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내일인가?”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출발 준비는 잘되어 가나?”

“네.”

“뭐 필요한 건 없고?”

“네.”

뭐야, 대답이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 루이센은 못마땅했다.

“가져가야 할 게 많지 않나. 이렇게 급히 떠날 준비를 하다 보면 분명 문제가 생길 텐데.”

“……그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겁니까? 이미 다 결정된 일입니다.”

칼튼은 눈썹을 찡그리며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더 여지를 안 주려고 딱 자르는 어투는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루이센은 그동안 칼튼의 눈치만 봐 온 덕분에 칼튼도 자신이 무리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 말을 돌린 것임을 눈치챘다.

‘그치. 이틀은 너무 서두르는 거라니까? 자기도 알면서 왜 이렇게 서두르지?’

이유가 있을 텐데. 루이센은 눈에 힘을 주고 칼튼을 살폈다. 칼튼은 뭐가, 라고 말하는 것처럼 턱을 살짝 치켜올렸다.

“비너드가의 사절 이야기는 확인해 봤고?”

“아니요.”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정찰이라도 보내서 안전을 도모하는 게 어떤가?”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