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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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의 순례자는 일면식도 없는 부랑자인 루이센을 구해 주었다. 곁에 두며 돌봐 주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정체를 밝혔음에도 루이센을 비난하지 않고 감싸 주었다. 루이센은 그 사람으로 인해 무지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외팔의 순례자는 루이센의 목숨을 구했고 영혼에 안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랬기에 루이센은 믿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신이 세상에 보내신 진정한 성자시구나!’

루이센은 외팔의 순례자의 모든 것을 믿었다. 순례자치고는 조금 과격한 언행이나 냉정하고 타산적인 모습까지도 존경했다. 숭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작님. 괜찮아요?”

루이센은 칼튼을 바라보았다. 그답지 않게 날이 선 표정에 칼튼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칼튼, 우리 처음 만나기 전에 내 얼굴을 알고 있었어?”

“예?”

칼튼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대답해 봐.”

뜬금없는 질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 꼭 그 대답을 들어야겠다. 루이센이 단호하게 다그치자, 칼튼은 의아해하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알고 있었죠. 공작님 얼굴이야 초상화도 많으니.”

“…….”

확인사살이었다.

외팔의 순례자는 루이센이 생각하는 성자가 아니었다. 그는 순례자조차 아니었다. 그는 그냥 칼튼이었다. 루이센이 아니에스 공작이라는 걸 알아보고, 정체를 숨기고 접근해 순례자인 척한 사기꾼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속아 넘어가서 그를 성자라 부르는 루이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가 루이센을 대하던 것에 조금이라도 진심이 담겨 있기는 했을까.

회귀한 직후, 루이센을 지탱해 오던 것은 외팔의 순례자를 향한 믿음이었다. 그의 가르침으로 힘든 순간들을 이겨 냈다. 그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자, 지지대를 뽑아 버린 것처럼 루이센 자신도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와 루이센이 함께하던 시간 동안, 그 후드 아래로 싸늘한 비웃음을 짓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자 아찔한 현기증이 몰려와, 루이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공작님!”

칼튼이 루이센의 몸으로 손을 뻗었다.

탁.

루이센이 칼튼의 손을 쳐 냈다.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라 당황하여 칼튼의 얼굴을 살폈다. 칼튼은 놀라다가 곧 눈썹을 찡그리며 루이센을 쏘아보았다.

루이센은 시선을 피했다.

“뭡니까? 아까부터 계속…….”

“칼튼 경. 저쪽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나? 아직 교황님과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만.”

완전히 밀어내기였다. 칼튼은 루이센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하,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면 안 될 이야기라는 거죠.”

칼튼은 휙, 돌아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루이센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아, 나 뭐 하는 거야.’

걱정되어서 달려온 사람에게 성질이나 부리고. 내가 이래서 칼튼도 화가 났겠지. 루이센은 가슴이 철렁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칼튼은 잘못이 없었다. 회귀 전의 칼튼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관련이 없다. 자신이 칼튼에게 모질게 구는 건 그냥 화풀이밖에 안 된다.

‘그건 알지만…….’

칼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과 별개로 그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루이센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교황이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봅니다.”

“아뇨. 아닙니다. 제가 여쭤본걸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길 바라요. 그 시간을 기억하는 건 그대뿐이니.”

“……네.”

“도움이 필요하다면 뭐든 말하고.”

“저랑 잠시만 더 이야기 나눠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진정이 좀 될 거 같아서 말입니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