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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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어떤 용건이시라고 하셨죠?”

“수도 정세 말이야. 왕성의 상황이나 귀족들 동향 같은 걸 알고 싶은데 조사해 둔 게 있겠지?”

“예, 총관님의 지시로 알아 두고 있습니다만……. 그런 게 왜…… 궁금하신지…….”

“왕자나 귀족들을 만나는 게 내 일인데, 알아 둬야 실수를 하지 않지.”

너무도 정상적인 답변이었다. 그래서 부총관은 더 현실감각이 없었다. 이 망나니가 그런 상식적인 말을 할 리가 없는데?

부총관의 당황은 그의 얼굴에 깔린 짙은 피로감에 덮혀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에, 루이센은 대수롭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왕성부터 말해 보게. 전하는 어떻지? 위급하다는 소식만 겨우 들었어.”

“아직 공작가로 온 연락이 없는 걸로 보아 살아 계신 거 같습니다.”

“‘같다’라. 왕성 안의 상황을 자세히 모르나?”

“네. 1왕자님이 왕성을 장악하면서 내부 인사가 많이 바뀌어 저희 쪽에서 심어 둔 정보원도 처리가 된 듯합니다.”

“그런가……. 1왕자와 그를 지지하던 귀족들이 득세할 건 예상한 바이지. 우리 쪽에 불이익이 있겠지?”

“아무래도 그렇지만……. 그래도 남부를 적으로 돌릴 게 아니라면 우리 공작가를 대놓고 핍박하지는 못할 겁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듯했지만, 부총관은 루이센이 입을 열 때마다 놀랐다. 이 정도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였으나, 문제는 대화하는 상대가 루이센이라는 점이다.

‘내가 지금 공작님이랑 평범하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이게 현실이라고?’

루이센은 가신들이 다 알아서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동안 자기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도 남 일처럼 나 몰라라 해 왔다. 수동적이기 짝이 없어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뒀지, 질문하고 알아내려고 한 적은 없었다.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공작님이 맞나?’

부총관은 루이센의 얼굴을 잘 살펴보았다. 그는 집안 대대로 공작가의 가신이었고, 원래는 공작령에서 일하다가 루이센이 수도로 오면서 따라온 사람이었다. 루이센의 평생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남들은 헉, 하고 넋을 놓고 보는 루이센의 얼굴도 그럭저럭 무심하게 볼 정도로 익숙하다는 의미였다.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섬세한 외모는 몇 달 전에 본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루이센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다. 어제, 루이센이 말을 타고 나타나 다가오던 그때부터 계속 이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총관은 곧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루이센이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이전의 루이센은 삶에 아무 기대가 없는 것처럼 무기력하고 나른했다. 그런 모습에서 풍기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귀족적이라 추앙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가신 된 입장에서는 못 미덥고 좋지 않았다.

무릇 황금들판의 주인이라면, 대지에 우뚝 선 나무처럼 세상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함과 뜨거운 태양 빛을 가려 주는 나무 그늘 같은 자비로움을 가져야 하거늘. 저런 루이센의 무엇을 믿고 아니에스 공작가의 가신들이 노력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루이센의 모습은 부총관이 기억하던 루이센과 정확히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루이센의 두 눈동자는 열정으로 또렷하게 반짝였고 표정은 생기발랄했다. 시선은 올곧았고 말에도 힘이 실려 있어, 루이센의 안에 확고한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전해졌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근심이 서려 있기는 했지만 두려움은 없었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처럼 당당했다.

사람이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공작님이 아닌 다른 사람인 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순간 든 의문을 부총관은 빠르게 부정했다. 루이센 같은 얼굴이 세상에 두 명이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루이센의 망나니짓에 학을 뗀 부총관도 그의 얼굴만큼은 인정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변했다는 건데…….’

부총관도 공작령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었다. 총관이 편지를 보내어 루이센이 달라졌다고, 손주 자랑하는 어르신처럼 호들갑을 떨었더랬다. 루이센이 순례자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도왔다는 소문도 들었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