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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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센은 눈을 끔벅였다.

‘깜짝이야.’

순간 칼튼이 아니라 외팔의 순례자가 앞에 서 있는 줄 알았다. 칼튼을 보고 외팔의 순례자를 떠올렸던 것은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처럼 완전히 그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이유는 오른손으로만 검을 쥔 자세가 결정적이었다. 외팔의 순례자는 검을 쓸 때 왼쪽 팔을 뒷짐 지고 몸을 비스듬히 틀어 서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왼쪽 측면을 보호하기 위한 자세였다. 그로 인해 휘두른 검을 수거하는 모습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유의 자세가 만들어졌다.

칼튼이 그 자세와 똑같이 움직인 것이다. 지금 칼튼도 왼쪽 팔을 다쳤으니 비슷하게 움직인 걸 수도 있겠지만 루이센의 머릿속에 지난번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계속 겹쳐 보일 수 있나?’

보기 드문 건장한 체격,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고방식, 요령이 좋은 모습, 여러모로 외팔의 순례자와 칼튼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 외에도 말로 할 수 없는 사소한 부분에서 두 사람이 자꾸 겹쳐졌다.

‘이 정도면 그냥, 같은 사람 아니야?’

루이센의 양팔에 소름이 쭉 끼쳤다. 스스로 생각해 놓고도 믿기지가 않아 머릿속으로 되물었다.

‘성자님이 칼튼이라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루이센은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 회귀 전의 칼튼을 떠올렸다.

칼튼은 1왕자가 즉위한 뒤, 사형을 앞두고 도망쳤다. 그의 행방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으나, 확실한 건 루이센이 죽는 날까지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가 어떻게 그렇게 모습을 숨겼는지 이해가 갔다.

‘칼튼은 순례자의 증표를 가지고 있었을 테니, 순례자 행세를 하고 도망쳤겠지.’

그렇다면 외팔의 순례자는 어떠한가? 그의 과거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 없다. 얼굴, 이름, 나이, 출신지,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흘러가듯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했을 때 과거 용병 생활을 했다는 것만 간신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일 년을 함께 했음에도 루이센은 그의 얼굴도 한번 보지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철저히 감추었다.

‘칼튼이 왕성에서 도망치면서 팔을 잃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칼튼이 순례자 행세를 하면서 외팔의 순례자로 불리게 된 거라면……?’

칼튼이 외팔의 순례자라고 가정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칼튼과 갑자기 튀어나온 외팔의 순례자의 존재가 매끄럽게 연결이 되었으며, 두 사람의 기묘할 정도로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설명이 되었다.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말이 되긴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작은 가능성도 없애 버리려는 듯, 루이센은 또 한 번 강하게 부정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성자님이 칼튼이라니. 절대, 안 된다고. 그래! 증거, 증거도 없잖아.’

회귀 전 외팔의 순례자가 칼튼이라고 확신할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알아봤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외팔의 순례자가 칼튼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루이센은 외팔의 순례자가 칼튼일 수 없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목소리가 다르다거나, 칼튼이 외팔의 순례자만큼 종교적 지식이 뛰어날 리 없다거나, 그런 사소한 것들 말이다.

“공작님, 안색이 안 좋습니다. 괜찮아요?”

루이센의 동요가 겉으로도 티나 나자, 보다 못한 칼튼이 다가왔다.

“어, 어…….”

“얼굴 제대로 봐요. 어디가 아픈 거예요?”

“아니, 그냥 좀 피곤해져서…….”

루이센은 마른세수를 하는 척하며, 칼튼의 시선을 피했다.

‘괜한 생각을 해서…… 칼튼 보기가 불편하잖아.’

너무 당황해서 그렇다. 조금 진정이 된다면 그때는 괜찮아질 것이다. 동부 대영주가 루이센의 안색을 보고는 혀를 찼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