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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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이 볼 수도 있으니, 드실 거면 방에 가서 드시죠.”

“어, 그래.”

“자루는 방까지 들어다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자네가 왜?”

“왜, 도와 드려도 불만입니까?”

불만은 아니고 불안하긴 하지.

루이센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칼튼은 또 허, 하고 한숨 비슷하게 탄식했다.

“가시죠.”

그러나 칼튼은 친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자기 멋대로 성큼성큼 먼저 앞서갔다.

‘뭔데 진짜?’

칼튼의 묘한 시선과 반응에 루이센은 무척 찜찜했다. 루이센은 칼튼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남자다운 이목구비 위로 달빛이 드리웠고, 그 탓인지 굉장히 심란해 보였다.

‘왜 저러지? 미쳤나?’

갑자기 왜 도와주는지 루이센은 칼튼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는 내가 눈치가 있었던가. 루이센은 포기가 빠른 청년이었다.

칼튼이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당장 땅속의 노파를 집어 던질 정도로 화를 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 짐작도 하지 못했다.

***

다음 날.

공작성은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온 성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창고 문을 열어젖히고 마을로 보낼 물자를 수레에 싣기 위해 하인들 모두가 동원되었다.

하인들은 성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알음알음 성 아랫마을의 사정을 들은지라 일이 늘어났음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 아랫마을에 가족이나 애인, 친구를 둔 사람들이 많았기에 다들 자기 일처럼 도왔다.

루이센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북적이는 소리를 듣고 아침이 왔음을 알아차렸다. 어제 땅속의 노파를 캔 뒤, 총관을 만나 상의하고, 확인할 것이 있어 책을 보다 보니 밤을 새운 것이다.

‘내 인생에 책을 보다가 밤을 새우는 날이 올 줄이야.’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루이센은 뻐근한 눈을 꾹꾹 누르며 일어섰다. 아침에 가신들과 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을 잡아 둔 상태였다. 루이센은 루거의 수발을 받아 준비를 하고, 방을 나섰다.

공작성에는 커다란 연회홀이 있었다. 저녁 만찬이 있을 때 쓰는 식당이랑 다르게 가솔들을 모아 식사하는 용도로 만들어져서 조금 더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루이센이 도착하자, 의자에 앉아 있던 가신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하나같이 피로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오셨습니까, 영주님.”

“간밤에 잠을 설치신 겁니까? 눈가가 어두우십니다.”

“아, 약간.”

“저런……. 그래도 쉬어 가면서 하셔야지요.”

루이센이 자리에 앉자, 시종들이 음식을 나르면서 식사는 무난하게 시작되었다.

먹을 게 풍부한 지역이다 보니 공작가의 식탁은 온갖 음식으로 다채롭게 상을 가득 채우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딱 먹을 만큼만, 소박하게 차려졌다.

농부의 것에 비교될 만한 식탁이지만 떠돌이 생활로 음식이라면 모두 공평하게 사랑하게 된 루이센은 즐겁게 식사를 했다. 예전 같으면 밥투정을 했을 텐데, 가신들은 루이센이 한결 더 성숙해졌다고 속으로 감탄했다.

식사를 하면서 가신들은 어제 회의에서 결정된 것들을 이야기해 줬다. 루이센은 들어도 잘 모를 테니 형식적인 보고였지만 그래도 영주인 루이센에 대한 존중이 느껴졌다.

한바탕 무거운 이야기가 오가고, 재무관이 가볍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어제저녁에 마을로 내려가 영주님이 직접 스프를 나눠 주셨지요? 그게 상당히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기사단장이 그 말을 이어받았다.

“저도 마을에 갔다 온 기사들에게 들었습니다. 좀 전에 마을에 다녀온 기사들 말이, 걱정한 것보다 침착한 분위기라더군요.”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