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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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튼은 퉷, 하고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 냈다. 그의 주변으로 한때는 일행이었던 모리슨의 부하들이 쓰러져 있었다.

오늘 아침,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는 모리슨의 제안을 들었을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객실에서 루이센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에 불쾌했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고 무시했다. 그 기분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처음에는 평범하게 짐을 날랐다. 그러다 점점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센은 언제 어떻게 튈지 예상이 안 되어서 눈앞에 없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평지를 걷다가도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인데,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안 되겠다 싶어 루이센을 찾아가려는데 모리슨의 부하들이 갑자기 칼을 뽑아 들어 기습했다.

그제야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을 계속 경계하고 의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칼튼은 검을 꺼내어 맞대응했다. 모리슨의 부하들은 모두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개개인의 검술 실력도 무척 뛰어났으며, 한두 번 합을 맞춰 본 게 아닌 듯 연계 동작도 뛰어났다. 고도의 훈련을 받으며 길러진 정예병들로, 어느 영지에 데려다 놔도 한자리할 실력자들이었다.

다만 상대가 칼튼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칼튼은 상식을 벗어난 강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나 대인전에 능숙했다. 그는 순식간에 모리슨의 부하들을 쓰러뜨렸다. 칼튼은 쓰러진 놈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뭐 하는 놈들이냐? 누가 보낸 거지?”

당연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칼튼도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그냥 초조해서, 모리슨과 함께 있을 루이센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아무 말이나 지껄인 거다. 놈의 머리를 대충 내팽개치고 갑판으로 뛰어 올라갔다.

사람들이 칼튼의 흉흉한 살기에 놀라 뒷걸음치면서 저절로 길이 열렸다. 배 위에서 칼튼은 루이센을 찾았다.

‘공작님은?’

없다. 어디에도 루이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딨지?

어디로 간 거지?

내가 그 사람을 못 찾을 리 없는데, 왜 보이질 않지?

모리슨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모리슨이 루이센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방심했어.’

전부터 모리슨을 수상하다고 여겨 왔다. 이상하게 그가 거슬리고 싫었다. 칼튼은 자신의 직감을 신뢰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모리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모리슨의 정체를 알아내고 루이센의 곁을 지켰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직감을 무시하고 본능이 보내온 경고도 듣지 않았다.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안일한 행동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내내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날카롭게 갈고 닦은 감각들이 무뎌지고 온 신경이 다 루이센에게 쏠렸다. 분명 더 많은 신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루이센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루이센과 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웃고, 입을 맞추고, 밤에는 몰래 갑판으로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또다시 입을 맞추고. 뭘 하지도 않았는데 지루할 새도 없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허공 위를 걷는 것처럼 붕 떠서, 처음 사탕을 먹은 어린 애처럼 마냥 황홀감에 빠져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복잡한 계략을 쓴 것도 아니고, 기이한 마법에 당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허무하고 어이없게 루이센을 잃어버리고만 것이다. 막막한 후회가 몰려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던 때에도 냉철하게 돌아가던 머리가 지금은 텅 비어 버렸다. 그저 루이센이 이따 보자고 손을 흔들던 모습만 떠올랐다.

히히힝!

익숙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제피스가 칼튼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 제피스. 네가 있었지.’

칼튼은 제피스의 위로 뛰어올랐다. 제피스는 루이센과 함께 있었다. 영리한 놈이니 모리슨이 루이센을 어디로 끌고 갔는지도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랴!”

칼튼은 거세게 말을 몰았다.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항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