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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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간의 전투가 허무할 정도로 칼튼의 군대는 간단히 공작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의 주인인 루이센이 앞에 서서 손짓을 하자, 아무리 위협을 해도 열리지 않던 성문이 스르륵 간단히 열렸다.

성벽 위의 사람들은 루이센이 왜 성 밖에 있는지, 적들과 같이 나타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나 영주가 성문을 열라는데 열 수밖에 없었다.

칼튼의 군대는 성에 들어가자마자, 능숙하게 병사들의 무장을 해제시켰으며 성을 장악했다. 애초에 병사들의 대부분은 농민병이었다. 성문이 열리자 경악하며 도망치기 바빠 손을 쓸 것도 없었다.

가신들은 외성에서 달려온 전령의 소식을 듣고, 내성의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칼튼의 환영이라기보단 사실상 루이센을 잡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잠시 대화를 나눌 시간을 드리지요.”

칼튼의 친절한 제안에 루이센은 하얗게 질렸다. 잘난 척하던 뻔뻔한 기세는 어디로 가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표정이었다. 툭 치면 꽤애액, 하고 울 것 같았다. 칼튼이 그 모습을 기쁘게 감상했다.

‘아, 제발!’

허튼짓 못 하게 영주와 가신들을 분리해 두는 게 상식 아니냐고!

그러나 칼튼이 무서워서 항의도 한마디 못 하고, 어버버 하는 사이 그는 가신들과 함께 회의실로 밀어 넣어졌다. 루이센은 쭈뼛거리며 돌아섰다.

회의실은 끔찍한 정적으로 가득 찼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것처럼, 공작성의 가신들이 모두 자신만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이 루이센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루이센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리고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입을 뗐다.

“항복했다네.”

“미치셨습니까?”

평소에도 입이 가벼운 재무관이 소리를 질렀다.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 사람들의 반응은 다 비슷했다. 제정신이야? 미쳤어? 영주가 돌아 버렸어! 말은 하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럼 이제 우리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반역자로 찍히지 않았습니까?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요.”

“저 잔악무도한 놈을 보낸 이유가 뭐겠습니까? 공작가에 생존자를 남겨 두지 않고 끝내겠다는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항복을 하신 겁니까!”

기사단장이 속이 터진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가슴을 내리쳤다. 검과 갑옷을 빼앗겨 볼품없는 기사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루이센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여린 하인들은 끔찍한 최후를 떠올리며 눈물을 지었다.

“걱정할 거 없어. 우리는 모두 무사할 거네.”

“어떻게요?”

재무관이 물었다.

“1왕자가 바라는 건 공작가의 멸망이 아니니까.”

루이센은 칼튼에게 했던 설명과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1왕자가 칼튼을 이곳에 보낸 이유, 루이센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 등.

“그래서 칼튼 경에게도 합의를 받았네. 공작령 내에서 절대 약탈은 없을 거고, 우리 영지민들을 괴롭히지도 않을 거야.”

“정말입니까?”

약탈이 없다는 말에 재무관이 놀랐다. 군대를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재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지간히 부유한 가문이 아니고서는 약탈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특히 칼튼처럼 용병 출신들은 강도나 다를 바가 없이 인정사정없기로 유명했다.

“칼튼은 왕자의 명에 따라 1왕자의 편에 서지 않은 남부 영주들의 충성맹세도 받아 내려고 하고 있어. 우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니, 그쪽도 생각이 있다면 조심할 거야.”

루이센의 주장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답지 않은 영민한 모습에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인 집사는 감탄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의심을 먼저 했다.

듣기에 그럴듯하긴 한데, 말한 사람이 루이센이라서 문제였다.

‘영주님이 저렇게 똑똑한 말을 할 리가 없는데…….’

‘저 말을 믿어도 되는 거야? 저 망나니가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공작가의 가신들은 루이센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달도 제대로 영지에 머무르지 않는 영주다. 영지 일은 나 몰라라 하고 놀아나기 바쁜 영주. 가만히 있으면 좋을 텐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고도 모자라, 정치에 잘못 발을 들여서 조용한 가문을 내전의 소용돌이에 내던지지 않았나.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