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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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사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길했다. 칼튼의 본능은 얼른 저 사악하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피하라고, 달아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도 재수 없더니 죽어서는 더 짜증이 나네.’

칼튼은 죽음의 기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1왕자가 무심히 죽음의 기사에게 명령했다.

“저자는 방해만 되는구나. 죽여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죽음의 기사가 말을 타고 달려들었다. 죽음의 기사가 들고 있던 검은 창이 칼튼을 향해 날아왔다. 칼튼은 옆으로 몸을 구르면서 피했으나, 더 높은 위치에서 내리꽂듯 날아오는 창을 완전히 다 피하기란 어려웠다.

“윽.”

창은 칼튼의 왼쪽 팔을 스치며 큰 상처를 냈다. 칼튼은 상처를 오른손으로 꾹 눌렀다. 피가 손을 흥건하게 적셨다. 운이 좋아 이 정도지, 잘못하면 팔 하나가 날아갈 뻔했다.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겠어.’

칼튼은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상황은 칼튼에게 너무도 불리했다.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입은 정장과 구두는 칼튼의 동작을 방해했고, 날카로운 공격으로부터 그의 몸을 지켜 주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럴듯한 무기도 없었다. 1왕자를 만나면서 무기를 소지할 수 없게 되어 있어 평소에 쓰던 검은 방에 두고 왔다. 혹시 몰라 챙겨 온 단검은 알현실 앞에 도착하기 전에 몸수색을 받다가 빼앗겼다.

반면 상대는 한 명도 빠짐없이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죽음의 기사는 말할 것도 없고 더블레스 백작의 기사들은 방패에 칼까지 갖추었다. 죽음의 기사가 칼튼에게 직접적으로 공격을 쏟아 냈다. 그 뒤에서 백작의 기사들이 대열을 유지하며 둥글게 칼튼을 에워쌌다. 철로 만든 방패를 앞세웠기에 그들은 마치 조금씩 좁혀져 오는 벽처럼 보였다.

칼튼이 아무리 놀라운 체력을 가지고 있어도 한계가 있었다. 기껏 차려입은 옷과 정리한 머리가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였다. 받아칠 무기도 없이 모든 공격을 피하기는 무리라, 상처가 점점 늘어났다. 특히 처음에 죽음의 기사에게 베인 왼팔은 상처가 깊어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칼튼은 씨익, 웃었다.

‘고작 이딴 걸로 날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생의 대부분을 이런 아수라장에서 보낸 칼튼이었다. 정말 죽겠다 싶은 순간에도 그는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야말로 칼튼을 숱한 전투를 거치면서도 이 나이까지 살아남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의 눈에는 이 압도적인 열세를 헤쳐 나갈 길이 보였다.

더블레스 백작의 기사들. 그들은 충직한 기사였지만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죽음의 기사를 불쾌해했고, 멀리 피하고 싶어 했다. 같은 편인 걸 알면서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같은 사람인 칼튼보다 죽음의 기사를 더 의식하고 있었다.

휘웅.

긴 창대가 허공을 가르며 칼튼을 향해 날아왔다. 칼튼은 공격을 피하면서 일부러 백작의 기사들 쪽으로 굴렀다. 죽음의 기사는 재빠르게 칼튼의 뒤를 쫓아오며 창을 내질렀다.

갑작스레 죽음의 기사가 가까이 오며 창을 휘두르자 일정한 속도로 포위망을 좁혀 오던 백작의 기사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움찔하면서 한 발을 뒤쪽으로 빼는 기사도 있었다. 그들은 죽음의 기사와 한편이기는 했지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고, 칼튼을 향한 창날이 운 나쁘게 자신들을 향할까 봐 겁을 먹고 있었다.

훈련을 잘 받은 기사들이기에 아무도 대열에서 이탈하지는 않았지만 틈이 생겼다. 칼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기사의 방패에 몸을 들이받았다. 완전무장한 기사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쇳덩어리였으며 방패가 더해지면 철벽이나 마찬가지였다. 칼튼의 행동은 철벽에 몸을 내던지는, 자해에 가까운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칼튼의 시도는 성공했다.

쾅!

칼튼과 부딪친 백작의 기사와 덩달아 그 옆에 있던 기사까지 뒤로 밀려 넘어졌다. 백작의 기사들이 죽음의 기사 때문에 주춤하는 찰나, 한 발을 뒤로 뺐던 기사를 놓치지 않고 들이받은 것이다. 그 기사는 본능과 명령 사이의 내적갈등으로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던 중이었기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넘어뜨릴 수 있었다. 물론 쇳덩이랑 부딪치고도 멍도 안 드는 칼튼의 괴물 같은 튼튼함도 한몫했다.

13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