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이네요.
현대 의학에서 처음 발견한 거예요. 참 신기한 것은 감기와 같은 세포가 있는데, 백혈구가 감기세포를 죽이지 못 해서 계속 생성시켜 더 병을 악화시키고 있어요.”
조명 하나만 켜진 야간 상담실에 의사와 여자가 곁에만 있어도 압도될 정도의 무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측은 의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떨구더니 약간 희망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감기와 비슷하다면, 어느 정도는 치료가 가능한 거예요? 그렇다면, 어떤 조치던 해주세요. 제발……
내 딸애를 어떻게든 살려주세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자는 의사의 손을 잡았다. 의사는 여자의 손을 다른 손으로 위에 얹고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조치 가능한 선에서 처방을 할 겁니다. 다만, 치료제가 아니고 완화제입니다.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 뿐이죠. 약을 먹게 되면 대략 20대 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의 끝을 알리기 시작하는 노을은 새 떼와 함께 건물들 사이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큰 골목에는 차들과 사람들이 북적이면서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더운 날 배낭을 메고 긴 팔에 크고 두꺼운 후드를 입은 사람이 골목을 빠져나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
상대가 바쁜지 한 동안 전화만 울리다 끊겼다. 문득 거울가게 앞에 자신을 확인하는데,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긴 앞 머리가 전부인 소녀였다. 더위에 땀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자 자신의 손목으로 땀을 닦고, 땀으로 찌들어 쉰 내가 나는 자신의 옷을 맡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소녀는 끊임없이 걸었으며 틈 날 때마다 수시로 전화했지만, 상대는 전혀 받지 않았다. 중간에 더위에 의식이 끊길 뻔하면서도 걸음을 재촉했다.
결국 노을이 다 지고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불 때 즈음 가로수가 그녀의 길을 비추고 가로수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달빛이 인도해주었다. 걸음을 멈춘 소녀는 다리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전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을 하고있자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고, 엄마가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일하느라 바빴거든. 어때, 저녁은 먹었어?”
“하루 먹는 약 만으로도 배부른데? 그것보다 집밥 먹고싶어. 언제와? 1시간 걸리려나?”
“그 정도 될꺼야. 우리 딸래미 매일 아파서 어떡해? 엄마가 대신 아프고 싶다.”
엄마의 말에 마음이 미어진 소녀는 울적해졌다. 사춘기 시절이지만, 엄마가 주는 애정과 모종의 이유로 빨리 철든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가 안쓰럽고 미안했다.
“아니야 엄마. 팔팔하다구? 잠깐 공기 쐬러 다리 산책하고 있어. 그러니까 좀만 있다가 들어갈게요.”
“그려. 엄마도 맛있는 밥 해놓고 기다릴게. 얼른와?”
전화를 끊은 소녀는 위험하게 다리의 난간에 걸터앉아 바다와 같은 호수를 내려보았다. 아찔한 상황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걱정하는 말들을 할 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강풍이 불기를 바랐다. 한순간에 바다로 빠져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손으로 뛰기는 겁났다. 괜스레 난간을 부여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시간만 허비한 소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조용히 들어온 그녀는 엄마가 밥 준비하고 있자,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샤워기로 몸에 물을 묻히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거울의 모습에 비춰진 소녀의 모습은 거울가게에 비춰진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거울의 비춰진 소녀의 모습은 신기해서 마치 소설 속에 나올 법했다.
그녀의 팔다리에 중간크기의 식물뿌리가 자라나 휘감고 있었고, 무성한 이파리들이 그 위를 덮개처럼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어깨부터 무궁화가 한두송이 보이더니, 머리로 올라갈수록 더 무성해져 줄기는 머리를 둘러싸고 무궁화들이 아름답게 그 위에 피어있었다.
마치 화관보다도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던 소녀는 침울해하며 기운이 빠지더니 자신의 무궁화를 어루만지며 주먹을 세게 쥐어 망가뜨렸다. 손을 치워보자 무궁화는 헝클어져서 형태만 겨우 남았다. 그러자 자신도 고통스러운지 눈을 꼭 감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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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자라는 소녀
Short Story몸에 아름다운 무궁화가 자라나는 희귀병을 앓고있는 소녀.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 꽃은 그녀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그녀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약에 의존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소녀는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무언가를 계획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