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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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을 펼친 채 제 앞에 앉아있는 정국을, 윤기는 조용히 쳐다보았다.

툭, 툭.

넋이 반쯤은 나간 듯한 표정으로 키보드 위를 만지작거리는 얼굴이 확실히 정상은 아닌듯해 보였다. 쓰읍. 윤기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정국을 불렀다.

"야 전정국."

"..."

"전정국."

정국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퀭한 얼굴로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술을 웅얼거릴 뿐이었다. 뭔갈 중얼거리고 있는건지 그저 의미없는 움직임인 것인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것만은 분명했다. 얘가 왜이래. 중얼거린 윤기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탁 하는 강한 소리와 함께 책상이 흔들렸다. 흠칫 하며 어깨를 떤 정국이, 고개를 들어올려 윤기를 바라보았다.

"아 깜짝이야. 뭐야."

"전정국 너, 저기 저 화장실 좀 갔다와 봐라."

"...나 안 졸리거든?"

"누가 세수하고 오래? 가서 거울로 니 얼굴좀 보고 와봐. 더도 덜도 말고, 딱 병신같아."

"..."

"어제 어디서 처 맞고 왔냐? 꼬라지가 왜 그모양인데."

정국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노트북 옆에 두었었던 아이스커피 컵을 들어올렸다. 컵이 있던 책상 위는 젖은 자국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이미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정국은 다시금 모니터 위로 눈을 돌렸다. 아까부터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그 화면의 정체는 태형과의 메시지 창이었다. 정확히는, 이제 막 모든 팀플을 끝낸 상태인 메시지 창이었다.

「내 꾹이 그동안 수고했어!!」

「♥♥♥♥♥♥♥」

사실 상황은 명료했다. 과제에 있어서의 태형은 처음부터 그랬듯 철저하고 꼼꼼했으며, 발표를 하루 앞둔 전날 지금은 모든 것이 마무리된 상태였다. 자신은 태형에게 완성된 PPT를 보냈고, 이제부터 태형이 발표를 준비하면 끝날 일이었다. 정말 그것이 다였다. 그런데도, 정국은 태형의 저 메시지에 무어라 답장을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예전처럼 씹어버리고 싶지도 않았고, 의미없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바보같았다. 별것도 아닌 이깟 메시지 하나에 왜 안절부절하고 있는 건지,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수고했다'. 그 네 글자가 주는 끝이라는 어감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친건가. 정국은 짜증스레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부르튼 입술을 조급하게 깨물었다. 며칠 전부터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몹시도 부끄럽지만, 그리고 윤기나 남준에게 들켰다가는 어디 양지 바른 곳에 묻혀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요즘의 자신은 자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고칠 수 없는 독한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몸도 마음도 이상해져 버린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꾸만 심장이 떨렸다. 태형의 저 메시지에 답장을 보낼 수 없었던 것도 어쩌면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모니터 위가 까맣게 변할 때마다 그 위로는 자꾸 태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무의미한 클릭질로 화면을 계속해서 지우면서도 그랬다. 태형의 생각을, 그리고 그때마다 함께 시작되는 떨림을 도통 멈출 수가 없었다.

"..."

정국은 다시금 윤기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의심스럽다는듯, 윤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정국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정국은 괜스레 윤기가 원망스러웠다. 윤기의 말대로 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윤기의 말대로 줄곧 차가웠고, 줄곧 딱딱했고, 줄곧 평소처럼 나쁘게 굴었을 뿐인데...태형은 결코 밀쳐지지 않았다. 밀쳐지기는 커녕 더욱 더 가까워 지기만 했다. 아니, 되려 그 시간동안 정신없이 변해버린 것은 자신이었다. 자꾸만 평정심을 잃었다. 태형으로 인해 비정상처럼 망가질꺼라 생각했었던 자신의 일상이, 이제 태형이 없으면 비정상이라 느껴질 것 같았다. 이것은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며칠간 생각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전혀 변화도 그리고 변화가 생길 기미도 없었다. 미쳤나보다. 정국은 그렇게 생각을 고쳤다. 그리고 또다시 꺼져 있었던 노트북의 화면을 클릭해 켰다. 이번에는 무의미한 동작이 아니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정국은 태형과의 메시지 창을 클릭했다.

깜빡, 깜빡.

타자를 기다리는 커서의 움직임이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정국은 쉼호흡을 했다. 일단은 태형부터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리고 확실히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일단은 태형을 보아야만 자신의 이런 상태가 해결될 것 같았다. 후우우. 긴 숨을 흘려내보내며, 정국은 양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얹었다. 하나씩 하나씩 자판을 누르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사차원 김태형과 CC가 된다는 것 -;뷔국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