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꽃등은 꺼지고 시야를 가리는 공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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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태조 25년, 942년, 7월이다. 7월은 한창 무더울 때쯤이지만 작년 겨울부터 계속된 가뭄 때문에 더더욱 찌는 듯이 더웠다. 밖에 나가면 여기저기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조금만 야외에 있어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는 황제가 가뭄을 연유로 황족들의 다미원 출입을 금하자 우리 다미원 궁녀들은 며칠 동안 할 일 없이 처소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다. 뭐, 다미원이 물을 많이 쓰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그뜻은 우리도 밤에 넓은 세욕탕에서 씻을 수 없고, 정말로 필요한 곳이 아니면 물을 아껴야 한다는 뜻.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속바지에 속치마에 겉치마에 긴팔 저고리 차림에 익숙하겠지만 나는 21세기 현대인, 민소매 셔츠와 미니스커트, 샌들과 에어컨으로 여름을 나던 나는 더욱 더 푹푹 찔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오상궁과 상침들의 말로는 황제가 직접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지만 하늘이 우리 뜻대로 움직인다냐? 옛날에는 기우제만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하지만 그것은 바로 비가 올 때까지 끊임없이 끈기 있게 기우제를 올린 결과일 뿐이다.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바로 뜨거운 땡볕 아래서 허물어지고 있는 황제의 건강이었다.

-온 백성이 기우제를 바라건만 내 몸은 따라주질 않고 정윤은 돌아오질 못한다.

-폐하, 황자님들 중 한 분은 어떨지요? 물의 기운이 충만한 분이 기우제를 올린다하면 백성들의 분란이 가라앉을 겁니다.

그래. 그래서 오늘 황자들 중에서 기우제 제주(祭主)를 뽑을 예정이다. 뭐, 뽑는 방법은 제비뽑기지만, 그렇게 뽑힌 사람이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런거 다 운이지.

하, 그나저나 이렇게 있다간 쪄 죽겠다, 진짜! 망할 기우제를 올리든 개기든 어떻게든 비 좀 내려라!

♤♡☆♧

태사관

왕소

"황자, 왕원님. 병술년(丙戌年) 생. 맞게 적으셨죠?"

"맞네, 맞어. 어휴, 이게 다 뭔 짓인지."

지몽의 말에 원이 삐딱한 말투로 말하고는 사기 항아리에 이름패를 던져 넣었다. 투덜대며 자리로 돌아가자 뒤에 서 있던 은이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이름패를 꽉 쥐었다. 그리고 참 은이 답게 지몽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저 그 지몽, 나 좀 빼주면 안 되나?"

"예?"

"난 이런 일에 이름 올리는 게 아주 싫네. 행여 제주로 걸렸다 온갖 구설에 시달릴 걸 생각함... 무섭지 않은가?"

참 은이 다운 발상이었다. 그의 말에 욱이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은의 이름패를 빼앗아 들며 말하였다.

"은아, 어찌 편하기만 바라냐. 누가 됐든, 비가 내리는 게 급선무다."

그러며 땡그랑- 소리와 함께 10황자의 이름패도 항아리에 들어가자 여태껏 조용히 자리를 지켜왔던 정이 입을 열었다.

"형님, 비가 안 오면 제주는 어떻게 됩니까?"

"죽어야지."

"죽어요?"

요의 칼 캍은 답변에 정이 경악을 하며 되물었다.

"이 나라 건국 전에는 백성들이 직접 왕을 잡아 죽이고 그 피를 뿌려서 비를 바랬단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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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Dec 15,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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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