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방지수
<prologue>
초등학교 때였나... 오늘따라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 아빠 왜 전화 안 받아?"
"내가 어떻게 알아?"
".. 알겠어, 좀만 더 해볼께."
세 번째 전화 시도였나.. 그 때 받았다.
"아빠, 우리 오늘 뭐 먹으러 가자! 일요일..."
뚝.
아닐꺼야. 왜 아빠가 내 전화를 끊겠어, 나 사랑하잖아.
그렇지?
전화를 한 번 더 해봤을때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엄마, 아빠가 이상해.. 전화를 안 받아.."
"엄마가 뭐랬어. 빨리 라면 먹고 자, 엄마 오늘 아파서 밥 못해."
엄마도 어린 나를 떠났다.
손을 뻗어 설거지대 위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려 했다.
닫지 않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는 무리였다.
엄마를 부르려 했지만 이미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있던 의자에 올라가보았다. 꽤 높았다.
의자를 끌고와서 다시 한번 손을 뻗어보았다.
불가능하진 않아 보여서, 열었다.
.
.
순간, 죽을 꺼 같았다.
설거지대로 나는 떨어졌다.
원래 엄마는 설거지를 제때하는 편이였는데, 그날은 아니었나?
내 왼쪽 팔이 따끔거렸다.
무언가에 찔린 것 같은.. 아니 아예 박힌 것 같은 기분이랄까.
초록색 병.. 그리고 빨간색 물..
아픈 것보다는 무서운 게 컸다.
"어..엄마.."
말을 더 잇지 못한 채 나는 울었다.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설거지대에서 나왔다.
남은 오른 팔로 전화기를 잡아들었다.
1. 1. 9.
"제가.. 팔에서 피가.. 너무 아파요.."
처음에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어린이, 여기 장난 전화 하면 안되요."
"아.. 아닌데.. 진짠데.."
더 이상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실랑이가 계속될수록, 내 옷을 더욱 붉어져갔다.
결국은 왔다.
온 사람들은 다 놀랐다.
"너, 혼자야?"
"아니요, 엄마 있는데.."
"그.. 근데 왜 안 나오셨어?"
"엄마도 아프다던데요."
제일 덩치가 커 보였던 사람이 안방 문을 열었다.
덜컥 덜컥.
문은 열리지 않았고, 엄마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만 들려왔다.
"누구야!"
"119에서 왔습니다, 문 좀 여세요."
뭔가 이상했다.
엄마는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있었다.
"애가 이런지경인데, 뭐 하신거에요? 빨리 따라오세요."
"참나, 내가 왜?"
더 이상은 못 참았다.
"아파!"
목이 쉴 때까지 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맞은 자국이 날 상상케 했다.
눈을 떴을 때는 나 혼자였다.
"엄마.. 아빠.."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엄마. 어딨는거야.. 왜 어디간거야.."
무서웠다.
비명과 울음으로 뒤섞인 나를 누군가가 알아챘다.
다가온다.
다가왔다.
"여기 떠들면 안돼.."
"우리 엄마 좀 찾아줘요.. 우리 아빠도 괜찮아요.. 아무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은 가버렸다.
난 버려졌다.
그 어린 나이에...
이제 아빠의 얼굴은 기억조차 희미하고 엄마의 얼굴은 너무 생생하다.
어디선가 웃고 있을 엄마. . .
그 날이 어쩌면 우리 아빠의 마지막으로 숨 쉬던 날이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