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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역시 세상은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나 봐. 어쩌면 좋지. 엄마는 내가 엄마의 유일한 온 우주라고 그랬는데, 실은 그 우주가 보잘것없는 허상이었다네. 남들보다 느리게 다다른 사춘기가 억울해서 마지막으로 울어보려다가 말았어. 탓할 구석을 찾아보려 해도 나를 빼면 없는 걸 어떡해. 대책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돼? 나는 잠깐, 정말 아주 잠깐 깊은 잠이 들었다 깨어난 건데 모든 사람이 나더러 어른이래. 다들 나잇값을 운운하면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다그치네. 나는 잠깐 잠들었다 일어난 어린애일 뿐인데. 그저 조금 자란 어린애일 뿐인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엄마, 나이는 속절없이 쌓여 가는데 여전히 나는 어린 날에 묶여 죽기를 바라.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은 이제 이룰 수 없으니까 이렇게나마 빌어 보는 거야. 심술궂은 봄은 원래 쉽게 찾아와주지 않거든. 주제 모르고 살아가는 동안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미안해, 엄마. 나는 하나뿐인 엄마의 세상이 될 수 없었어. 엄마는 매번 엄마 눈 좀 보고 말하라고 잔소리했지만, 엄마가 깜깜한 내 민낯을 보는 게 무서워서 자꾸 등 돌렸던 거야. 미안, 엄마. 성공한 인생을 살아주지 못해서. 남들만큼 호강시켜주지 못해서. 별을 띄우지 못한 내 잘못이야. 그래도 엄마, 나 정말 노력 많이 했는데 잠들고 난 뒤에 딱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이렇게 가기에는 엄마 냄새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래. 엄마가 나 어릴 때는 맨날 안아서 재웠잖아. 커서는 그런 적 없어도 엄마가 어릴 땐 안고 키웠다고 말해줬잖아. 알고 보니 살고 싶었다는 미련 같은 건 아니고, 원래 내가 좀 그리운 것들이 많아. 곧 엄마 냄새가 그리워지면 금방 오늘을 떠올리려고. 그래서 그래. 막상 떠나려니까 조금 두려워진 것도 맞아. 그래도 마음 바꿀 생각은 없어. 많이 후회하는 만큼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엄마. 엄마는 때늦은 사춘기 대신 춥지 않은 내일을 보길 바랄게. 내가 그렇게 할게.

마지막으로 있지, 엄마, 정말 사실은 나,

아니다. 아니다. 아니야. 이것까지 말하면 여기에 더 머물고 싶어질 것 같아. 엄마, 다시 봄이 올까? 이런 나한테도 봄이 와줄까? 나에게 오는 게 싫다면 엄마한테는 가줬으면 좋겠어. 엄마 꽃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꽃 좀 어디 실컷 보라고. 응, 그랬음 좋겠어.

봄이 뜬대 엄마 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