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채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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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돌아오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렴풋한 소리가 들린다. 다음으로 시각이 돌아오고, 빛이 보인다. 물론 눈꺼풀이 닫혔으므로 그 빛은 붉은 빛을 띈다. 서서히 주변상황이 의식된다. 무의식이 정보를 처리하므로 나는 내가 또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이성적 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따라서 위기감 또한 없다.
이성적 사고가 깨어나려면 방아쇠가 필요하다. 의식에 충격을 줄만한 일종의 쇼크. 이 경우엔 작게 삐삐거리는 의료기기의 전자음이 그 역할을 했다. 집중할수록 커지는 삐......삐.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느 순간 내 의식은 각성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위기감을 느낀다. 동시에 눈꺼풀이 떠진다. 위로 보이는 회색 천장. 딱딱한 느낌의 금속 침대. 나는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버드의 커다란 눈이 은색으로 번뜩이는 금속들을 보고 크게 확장됐다. 양쪽 모두 상황을 파악하느라 1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버드였다.

"넴!"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한마디가 팽팽한 대치상태를 깼다. 의사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진정해요!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버드는 듣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넴은 어디 있지? 이건 허락된 채혈이 아닌 거지?"
의사들은 순간 침묵했다. 버드는 상황을 이해했다.
"넴을 불러! 나는 연합국의 시민이고 내 피나 신체정보를 제공할 때 법적 대리인과 상의할 권리가 있어!"
"우리 말도 좀 들어봐요. 급하게 데려와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럴 일이 있었다니까요? 당신은 지금..."
의사들은 다급하게 버드를 설득했다. 하지만 심장이
다급하게 뛰고 온 몸이 움츠러든 쪽은 오히려 버드였다.
'그들은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버드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찼다.

"잡아!" 의사 중 누군가가 존대를 집어치우고 외쳤다. 그대로 버드는 침대로 고꾸라져 의사들을 노려봤다.
이제까지 뒤에서 한마디도 없었던 노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품 속에서 편지를 꺼내 거즈를 버리는 통에 던져버렸다. 발신인에 넴의 이름이 언뜻 보인듯도 했다. 노의사는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버드에게 다가오며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너무 믿지 마."
'뭐?'
"당신 변호사 말이야."
버드가 영문을 몰라 경직된 사이에 노의사는 비장한 어조로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채혈기 연결해요. 채혈 끝나면 바로 떠나야해.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는 끝나."

***

버드는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선단공포증이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커다란 금속 바늘을 보고 거세게 저항했다. 악을 쓰고 발길질도 해봤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골다공증을 앓는 버드가 성인 여러 명의 무게를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자칫하다간 뼈가 으스러질지도 몰랐다. 붙잡힌 팔에 소름이 돋아 더욱 불안해졌다. 최후의 선택으로, 버드는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바늘을 있는 힘껏 밀어 어느 의사의 손등에 명중시켰다. 다친 의사는 고통스럽게 양 손을 겹쳐 잡았다. 그 틈을 타, 침대 옆으로 뛰어내렸다.
"문을 막아!"
그들이 외쳤다. 누군가가 트레이로 문을 가로막았다. 버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잡히는구나'
하지만 다음 순간, 미처 절망하기도 전에, 트레이가 문에 밀려 넘어졌다.

문이 벌컥 열리며 사복경찰들이 쏟아졌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신뢰를 주는 단단한 목소리.

"날아, 버드!"

버드는 그 목소리가 동아줄이라도 된 듯 땅을 박찼다. 앞뒤를 재지 않고 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의사들은 머리 위를 휙 스쳐지나가는 버드를 향해 탐욕스런 손들을 뻗어댔다. 다리를 잡고 끌어내리려는 손아귀들을 아슬아슬하게 가르며 버드는 방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횡단했다.

그 순간만큼은, 중력을 거스르면서.

***

BIRD.
버드.
지구 상의 유일한 반중력 인간이다. 덕분에 여기저기 연구협조 러브콜이 많이 들어오지만, 본인은 돈이 필요할 때만 협조하는 것으로 본인의 인생과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구분짓는 듯 하다. 열 다섯 살 때까지 공식적으로 행방불명이었고,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립대학에서 수학을 마친 후 세계배낭여행을 시작했다. 국제 프리패스를 보유중이다.

하늘을 나는 꿈 Flying Dream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